용인신문 | 비행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비는 여성 승무원과 수개월씩 배에서 생활하는 여성 선원. 근무 장소는 하늘과 바다로 완전히 다르지만 두 직업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밤이 되면 잠드는 평범한 생활이 어렵다는 것이다.
밤새 비행하고 몇 시간 만에 낮과 밤이 바뀌는가 하면, 배 위에서는 야간 당직과 교대근무가 반복된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땅의 시간'을 벗어나 생활하는 여성의 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최근 의학계가 주목하는 것은 이들의 '자궁' 자체보다 몸속에 존재하는 생체시계다. 여성의 생리와 배란은 단순히 자궁과 난소만의 일이 아니다. 뇌의 시상하부와 뇌하수체, 난소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생식호르몬의 정교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밤낮이 반복적으로 뒤바뀌고 수면시간이 불규칙해지면 이 생체리듬 역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2024년 국제학술지 '직업의학'에 발표된 국내 연구진의 8년 추적 코호트 연구는 야간근무와 불규칙한 생리주기의 연관성을 조사했다.
연구진은 장기간의 야간근무 노출이 여성의 월경주기 변화와 어떤 관계를 갖는지 추적했다. 야간근무가 여성 생식건강 연구에서 단순한 생활습관이 아니라 중요한 직업적 노출요인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과거 12만3403명의 여성을 포함한 16개 코호트를 분석한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도 비슷한 신호가 발견됐다. 교대근무 여성의 월경장애는 일반 근무 여성보다 많았고, 야간근무는 초기 자연유산 위험 증가와 연관됐다.
다만 연구진은 연령과 생활습관 등 교란변수를 보정했을 때 난임과의 관계는 명확하지 않았다며, 가임기 여성에게 교대근무 자체를 제한할 정도로 근거가 확립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왜 밤에 일하는 것이 생리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우리 몸에는 약 24시간을 주기로 움직이는 '일주기 리듬'이 있다. 잠이 들고 깨는 시간뿐 아니라 체온과 코르티솔, 멜라토닌을 비롯한 여러 호르몬 분비가 이 시계에 맞춰 움직인다.
여성의 생식기능 역시 이 시스템과 독립돼 있지 않다. 밤에 밝은 빛을 보고 낮에 잠들며 수면 부족이 반복되면 생체시계와 생식호르몬을 연결하는 신호체계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직업 가운데 하나가 항공 승무원이다.
승무원은 단순한 야간근무자가 아니다. 서울에서 출발해 몇 시간 만에 유럽이나 미국에 도착하면 몸속 시계와 현지 시간이 완전히 달라진다. 회복하기도 전에 다시 비행하면 생체시계가 새로운 시간대에 적응할 틈이 없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산하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승무원과 조종사가 시차와 야간근무에 따른 일주기 리듬 교란을 경험할 수 있으며 이것이 생식건강에서 고려해야 할 직업적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더욱 독특한 변수가 있다. 우주방사선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지상의 사람보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전리방사선에 더 많이 노출된다. 그래서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조종사와 승무원을 직업적으로 우주방사선에 노출되는 집단으로 분류하고 있다. 특히 장거리·고위도·극지방 항로에서는 노출량이 증가할 수 있다.
임신한 승무원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더욱 눈길을 끈다.
미국 연구진은 여성 승무원 764명의 임신 958건과 약 200만 건의 실제 비행기록을 분석했다.
임신 초기 평소 잠을 자야 할 시간에 15시간 이상 비행한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1분기 유산 위험이 약 1.5배 높았다. 장시간 서거나 걷고 반복적으로 허리를 숙이는 등 신체적 업무 부담이 큰 경우에도 유산 위험 증가가 관찰됐다.
우주방사선에서도 신호가 나타났다. 연구에서는 임신 초기 일정 수준 이상의 우주방사선 노출이 임신 9~13주의 유산 위험 증가와 연관될 가능성이 관찰됐다.
다만 연구진과 미국 보건당국 모두 이것을 '비행하면 유산한다'는 인과관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개인별 실제 노출량과 비행 일정, 연령, 건강상태 등 수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다 위의 여성은 어떨까.
여성 선원 역시 장기간 육지를 떠나 생활하지만 항공 승무원과는 노출 환경이 다르다. 비행기처럼 고도에 따른 우주방사선이 핵심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수개월간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야간 당직과 교대근무, 수면 부족, 피로와 스트레스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여성 선원의 생식건강 문제를 설명할 때는 '바다에 오래 있어서 생리가 나빠진다'고 해석하기보다 장기간의 교대근무와 불규칙한 수면, 스트레스가 여성의 생체리듬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실제 대규모 여성 노동자 연구에서도 교대근무와 야간근무 집단에서 월경 이상과 일부 생식건강 문제가 더 많이 보고됐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승무원이나 여성 선원이 자궁근종이나 자궁선근증, 자궁내막증, 난소낭종에 특별히 잘 걸린다고 단정할 만한 근거는 현재 충분하지 않다.
이런 질환은 연령과 유전, 호르몬, 출산력 등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관여한다. 직업 하나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해서는 안 된다.
반면 생리주기의 변화와 배란, 임신 유지처럼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생식기능'은 이야기가 다르다.
난임의학적으로 여성의 배란은 난소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뇌의 시상하부에서 시작된 신호가 뇌하수체를 거쳐 난소에 전달되고, 다시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등의 호르몬이 뇌와 자궁에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시상하부-뇌하수체-난소축'이다. 수면과 빛, 스트레스와 일주기 리듬은 이 시스템과 연결돼 있다.
때문에 생리가 갑자기 짧아지거나 길어지고, 몇 달씩 불규칙한 월경이 반복된다면 단순히 "직업 때문에 그렇겠지"라고 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갑상선 이상이나 다낭성난소증후군, 고프로락틴혈증, 체중 변화, 난소기능 저하 등 다른 원인이 숨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이라면 자신의 월경주기를 기록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주기가 지속적으로 크게 흔들리거나 무월경이 나타나고 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면 산부인과에서 배란 여부와 난소기능, 갑상선 등 기본적인 평가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도 현재 항공 승무원과 조종사의 생식건강 문제를 별도의 직업건강 영역으로 다루고 있다.
임신한 승무원에게 장시간 서 있기와 무거운 물건 들기, 반복적으로 허리를 굽히는 업무 부담을 줄이고, 가능하다면 우주방사선과 생체리듬 교란 노출을 낮추는 근무 방식을 고려하도록 안내한다.
결국 문제는 하늘도 바다도 아니다.
인간의 몸은 수백만 년 동안 지구의 낮과 밤에 맞춰 진화했다. 해가 뜨면 움직이고 어두워지면 쉬는 리듬 속에서 뇌와 난소, 자궁 역시 자신의 시간을 맞춰왔다.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야간근무와 장거리 비행, 시차와 교대근무는 그 오래된 생체시계에 끊임없이 새로운 시간을 요구한다.
하늘을 나는 여성과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여성들의 몸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그래서 단순하다. 우리는 장소를 떠나 살 수 있게 됐지만, 과연 몸속 시계까지 지구의 낮과 밤에서 자유로워진 것일까. 현재까지의 의학 연구가 내놓은 대답은 '아직 그렇지 않다'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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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국제학술지 『SSM - Population Health』에 발표된 교대근무와 여성 월경에 관한 메타분석, 『Occupational Medicine』의 8년 추적 코호트 연구, 미국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과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항공 승무원 생식건강 연구 및 지침 등을 종합해 작성했습니다. 특히 야간·교대근무에 따른 생체리듬 교란과 생리불순·생리통·조기폐경의 연관성, 항공 승무원의 시차 및 우주방사선 노출과 임신·유산 위험에 관한 연구 결과를 참고했습니다. 특정 개인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체하지 않으며, 실제 의학적 판단은 전문의 상담을 통해 이뤄져야 합니다.
※ 본 기사에 사용된 이미지는 생성형 인공지능(ChatGPT, OpenAI)을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로, 실제 인물이 아닌 가상의 인물입니다.
※ 이 기사는 아기성공연구소 제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