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10만 명 돌파 도내 대표 대도시 무색
분만 가능 산부인과 3곳에 불과 ‘원정 출산’
한해 5000명 내외 태어나지만 인프라 역행
젊은 의사들, 24시간 대기 ‘산부인과’ 기피
용인신문 | 출산을 앞둔 임산부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더 이상 출산일이 아니다. “어느 병원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산부인과 간판은 쉽게 보이지만 막상 분만이 가능한 병원은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저출산이 대한민국 사회의 존립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정부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중심으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으며 연일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산모들이 체감하는 출산 환경은 오히려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아이를 낳으라고 권장하면서도 정작 아이를 안전하게 낳을 수 있는 필수 의료 시스템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는 모순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합창하듯 터져 나오는 출산율 반등 신호가 무색하게, 지역의 모체·소아 진료 인프라는 인구 절벽보다 더 무서운 속도로 해체되고 있다.
이 같은 ‘분만 난민’ 현상은 비단 도서 산간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 110만 명을 넘어선 경기도 내 대표 대도시 용인특례시의 현실은 대한민국 분만 인프라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용인지역 내 간판을 걸고 있는 산부인과는 총 25곳에 달한다. 하지만 이 중 실제로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는 처인구, 기흥구, 수지구에 각각 단 1곳씩, 도시 전체를 통틀어 겨우 3곳에 불과하다.
산부인과 8곳 중 7곳 이상은 야간 당직, 인력 부족, 소송 부담 등을 이유로 분만실 불을 끈 채 외래 진료나 여성질환 치료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나마 용인시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인근 지자체인 여주시와 안성시의 경우 관내에 출산할 수 있는 분만 산부인과가 단 한 곳도 없는 ‘분만 취약지’로 전락했다.
■ 매년 5000명대 출산… 타 도시 원정 ‘다수’
문제는 용인시의 출생아 수가 매년 일정 수준 이상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용인시의 연도별 출생아 수 현황을 살펴보면 ▲2020년 약 5800여 명 ▲2021년 약 5500여 명 ▲2022년 약 5400여 명 ▲2023년 4941명 ▲2024년 약 5200여 명으로, 매년 5000명 안팎의 아기가 태어나고 있다.
매년 5,000명이 넘는 신생아가 태어나는 대도시에서 겨우 3곳의 병원이 모든 분만을 감당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수많은 용인 지역 산모들은 만삭의 몸을 이끌고 인근 수원시(8곳)나 성남시(6곳) 등 분만 인프라가 갖춰진 타 지역으로 원정 출산을 떠나는 불편을 겪고 있다.
■ 산후조리원도 줄줄이 문닫아
출산 인프라의 붕괴는 단지 분만실의 감소에 그치지 않는다. 출산 후 산모와 신생아의 회복을 돕는 필수 연계 시설인 산후조리원 역시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 용인 지역 내 30여 곳에 달했던 산후조리원은 경영악화와 분만 병원 감소의 연쇄 여파로 인해 올해 6월 현재 14곳으로 반토막이 났다.
출산할 병원을 찾기 힘든 산모들이 출산 후 머물 조리원마저 구하지 못해 ‘원정 조리’까지 고민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국적으로도 실제 분만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은 10년 전에 비해 30% 가량 감소했다.
분만 의료기관의 급감은 산모들의 정보 접근성마저 떨어뜨려, 임산부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나 직접 전화 문의에 의존해 겨우 출산 병원을 찾는 기현상을 낳고 있다.
■ 분만 포기하는 의사들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분만 현장을 떠나는 이유는 명확하다. 과도한 사법적 위험(Legal Risk)과 수가 불균형, 그리고 24시간 대기에 따른 노동 강도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분만은 본질적으로 예측하기 힘든 응급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최선을 다한 진료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 의료진 개인이 수억 원대의 배상책임이나 형사 처벌의 공포를 짊어져야 하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젊은 의사들은 산과 진료를 기피하고 소아청소년과와 함께 분만 현장을 떠나고 있다.
실제로 산부인과 전문의의 고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비수도권 산부인과 전문의 10명 중 8명이 50세 이상일 정도로 세대교체가 끊겼으며, 레지던트 지원율 역시 매년 하락하고 있다.
수가 체계 역시 한 몫을 한다. 24시간 인력과 장비를 유지해야 하는 분만실의 특성상, 산모 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가동할수록 적자가 발생하는 구조다. 이로 인해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떨어지고 리스크가 높은 분만실을 닫는 것이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고 있다.
■ 예산 지원 보다 ‘국가 책임제’ 확립 절실
전문가들은 출산지원금이나 일시적 수당 지급 같은 단편적 대책만으로는 무너진 분만 체계를 복원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무엇보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파격적이고 구조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우선, 환자 수와 상관없이 24시간 진료 체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대기 비용(Stand-by cost)을 보장하는 공공정책수가의 과감한 확대가 필요하다. 고위험 분만 및 신생아중환자실(NICU)에 대한 국가적 적자 보전 정책도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국가가 100% 책임을 지는 무과실 국가보상제도를 전면 확대하고, 형사처벌 면제 등을 담은 법적 안전망(필수의료 특별법)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일본의 ‘산과 의료보상제도’처럼 보상과 원인 분석을 분리하여 의사의 사법적 부담을 대폭 낮춰주는 선진 제도의 도입도 검토해 볼 만하다.
지자체 역시 방관할 수 없다. 용인시와 같은 대도시는 관내 거점 의료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지역 내 분만 인프라를 유지할 수 있는 전폭적인 행정·재정적 지원책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
아이를 낳겠다는 국민의 결심이 ‘아이를 낳을 병원이 없어 헤매는 고통’으로 이어지는 사회에서는 그 어떤 저출산 대책도 성공할 수 없다.
분만과 소아 진료는 시장 논리에 맡길 일반 서비스가 아닌, 국가와 지자체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최후의 ‘필수 공공재’라는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인구 110만 명이 넘는 대도시인 용인시에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고작 3곳 밖에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방 소도시는 물론 대도시에서까지 출산을 위한 의료 인프라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사진은 AI로 생성한 출산 인프라 부족 이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