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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 지키기와 제자리로부터의 탈주에 대하여

 

 

용인신문 | 변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속도 역시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어떤 이는 끊임없이 내면을 가꾸고 외적 위치를 바꿔가며 시대의 흐름을 쫓기도 하지만, 다른 어떤 이는 그러한 변화에 환멸을 느끼며 어딘가에 정착하기를 갈망하기도 한다. 『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이처럼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제자리’라는 개념에 대한 성찰을 여러 예술 작품을 통해 탐색한 저작이다.

 

저자 클레르 마랭은 ‘제자리를 지키는 것’과 ‘탈주하는 것’이라는 두 가지 욕구 모두에 각기 다른 문제가 있다고 본다. “존재한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여정이며, 머무는 행위조차 그 여정을 구성하는 정서적·사회적·지리적·정치적 기착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자리라는 개념을 탐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특정 장소와 연결되기 마련인데, 때로는 그 장소 자체가 개인에게 억압이나 폭력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는 제자리를 벗어나는 탈주가 절실하다. 반대로 탈주 역시 능사는 아니다. 자아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끝없이 방황하는 것 또한 존재의 안녕에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탈주’의 가치에 좀 더 주목한다. 대개의 작가는 제자리를 지키는 것을 일종의 구속으로 인식하며, 작품 속 주인공들이 이에 저항하고 불화하는 서사를 그려낸다. 설령 안전한 공간이나 가치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최종 목적이라 할지라도, 주인공은 우선 자신을 옥죄는 부조리로부터 벗어나야 하기에 이를 탈주의 서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우리가 왜 탈주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각적인 시선을 제시한다.

 

결국 『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나’라는 감옥에 매몰되지 말고 시선을 외부로 돌려보라고 권하는 지침서로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