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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의 생각의 온도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용인신문 | “아직도 아내를 사랑하십니까.”

 

신문기자를 하며 금혼식을 맞은 노부부나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부부를 만나면 종종 던지던 질문이다.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로 비슷했다.

 

“사랑은 무슨…. 그냥 같이 사는 거지.” 처음에는 그 말이 왠지 쓸쓸하게 들렸다. 사랑이 사라졌다는 고백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질문을 수십 년 반복하며 오히려 다른 사실을 깨닫게 됐다. 정말 오래가는 사랑은 자신을 사랑이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저 사람이 없으면 안 되지.”, “싸울 만큼 싸웠는데도 결국 집에는 같이 들어왔어.”, “평생 같이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라는 말을 했다. 사랑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삶 자체가 사랑을 증명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랑을 너무 오랫동안 명사로 배워 왔다. 사랑은 운명처럼 찾아오는 것이고, 한 번 만나면 변하지 않는 것이며, 가슴을 뛰게 하는 감정이라고 믿었다. 영화도 소설도 대부분 그렇게 가르쳤다. 그래서 설렘이 줄어들면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고, 예전 같지 않으면 관계가 끝나가고 있다고 불안해한다.

 

하지만 인생은 영화보다 훨씬 길고, 결혼은 연애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부모를 돌보고, 생계를 책임지고, 병원 진료를 다니고, 퇴직을 준비하는 동안 사람은 계속 변한다. 스무 살의 가치관과 예순의 가치관이 같을 리 없고, 건강도 변하고 경제적 여건도 달라진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게 사랑만은 처음 그대로여야 한다고 기대한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사랑이 변하는 것은 배신처럼 여긴다.

 

사실 변한 것은 사랑보다 사람이다. 뇌과학은 사랑에도 시간이 있다고 설명한다. 사랑은 처음에는 도파민이 만들어내는 흥분과 열정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옥시토신과 같은 안정과 신뢰의 체계가 관계를 이끈다. 설렘이 줄어드는 것은 사랑이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의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의 성장을 사랑의 쇠퇴로 오해한다. 꽃이 지면 나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취재를 하며 오래 행복하게 살아온 부부에게 비결을 물으면 거창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참았지.”

 

“양보했지.”

 

“미안하다는 말을 늦게라도 했지.”

 

“아무리 싸워도 밥은 같이 먹었지.”

 

처음에는 너무 평범한 말처럼 들렸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 말들이 얼마나 어려운 실천인지 알게 된다. 오래가는 사랑은 특별한 비법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행동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이어진다.

 

젊은 날에는 꽃다발을 안겨주는 사람이 사랑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의 모습은 달라진다. 퇴근길에 배우자가 좋아하는 빵을 하나 사 오는 사람, 병원 예약 날짜를 기억해 주는 사람, 약 먹을 시간을 챙겨주는 사람, 말없이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사람, 늦은 귀가를 기다리며 현관 불을 켜놓는 사람. 사랑은 점점 화려한 이벤트에서 사소한 일상으로 옮겨간다. 그래서 오래된 사랑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너무 평범해서 사랑으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사랑을 감정보다 행동으로 이해하게 됐다. 사랑은 기다리는 것이고, 이해하려 애쓰는 것이고, 먼저 사과하는 것이고, 다투고도 다음 날 아침 같은 식탁에 앉는 것이다. 사랑은 한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선택이다. 오늘도 상대를 위해 한 걸음 양보하고, 한마디 덜 상처 주고, 한 번 더 손을 내미는 일이다.

 

사랑은 가만히 두어도 저절로 유지되는 감정이 아니다. 돌보지 않으면 식물이 시들듯, 표현하지 않으면 관계도 메말라간다. 그래서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하루를 함께 견디고, 서로의 늙음을 받아들이고, 끝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 그 평범한 동사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결국 가장 오래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사랑은 특별한 순간에 완성되는 감정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끝내 써 내려가는, 인생에서 가장 오래된 동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