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서 토목·도로 분야 경험
4선 시의원 의정 활동의 자산
교량 등 문제점 족집게 대안
여든 넘긴 나이에도 동분서주
용인신문 | 16만 농촌에서 110만 특례시로 급성장한 용인의 역사를 현장에서 함께해 온 인물이 있다. 한국도로공사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교통의 핏줄을 뚫어낸 ‘토목·행정 전문가’이자 용인시 최초 4선 의원, 불교전통문화보존회 초대 회장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용인의 발전과 화합을 위해 발로 뛰어온 이종재 전 의장의 삶과 의정 철학을 인터뷰로 풀었다.
■ 용인 IC 진입로와 수포교의 기억
이종재 전 의장의 의정 활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단연 ‘전문성에 기반한 발로 뛰는 현장 행정’이다. 시의회 입성 전 한국도로공사에서 10여 년간 쌓은 토목·도로 분야의 경험은 4선 의정 활동 내내 빛을 발했다.
“의원 시절 공무원들에게 항상 교량과 도로 보수 현황, 전문 자료를 직접 요구하곤 했습니다. 현장을 알고 토목을 아니까 지적할 건 정확히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죠.”
특히 포곡 방면에서 용인 IC로 바로 진입하지 못해 주민들이 유방동까지 먼 길을 우회해야 했던 시절, 지역 언론의 도움과 함께 뜻있는 공무원들과 힘을 모아 램프 구간을 개설하고 진입로를 신설해 낸 일은 지금까지도 지역 사회에서 회자되는 대표적 성과다. 위험천만했던 수포교 철판 다리를 안전하고 모던한 교량으로 재건설하도록 당시 경기도지사 및 용인시장과 직접 현장을 누비며 설득해 낸 미담 역시 그의 집념을 보여준다.
■ 결과는 반드시 민원인에게 알려야
1995년 지방선거를 통해 52세의 나이로 처음 의정 단상에 선 그는 용인군이 용인시로 승격되고 인구 16만 명의 작은 농촌 도시에서 110만 명 특례시로 눈부시게 성장하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주도했다.
그가 4선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지역 주민들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이 아닌 ‘확실한 피드백(처리 결과 알림)’이었다.
“주민에게 민원이나 부탁을 받았으면 됐든 안 됐든 확실한 결과를 피드백해 줘야 합니다. 예산이 부족하면 ‘담당 부서와 협의해 다음 주까지 해결하기로 했다’ 혹은 ‘어떤 이유로 미뤄졌다’를 정확히 알려야 대변인 자격이 있는 것이지 그냥 손만 잡고(악수하고) 다니는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 전통문화 잇고 지역 화합 이끈 리더십
시의원 퇴임 후에도 그의 헌신은 멈추지 않았다. 용인시불교신도회를 ‘용인불교전통문화보존회’로 개명하며 초대 회장을 맡아 5년간 지역 전통문화 보존과 불교 부흥에 온 힘을 쏟았다.
당시 혜민스님 등 대중적·영적 영향력을 갖춘 스님들을 초청해 2000여 명이 모이는 대형 강연 및 행사를 성사시키는 등 사찰 간의 화합과 용인 시민의 문화적 자부심을 높이는 데 앞장섰다.
“큰 행사를 치르고 나면 다리가 후들거려 운전을 못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농사를 짓든 문화 운동을 하든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버텼습니다.”
■ 명석한 두뇌보다 무딘 연필 끝이 낫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한결같이 수첩을 들고 메모하면서, 매일 고향이기도 한 포곡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부지런한 삶을 이어가는 이종재 전 의장. 그는 인터뷰 내내 어머니가 생전에 전해주셨던 가르침을 수시로 되새겼다.
“아들아, 아니, 의원님, 지금은 현직이기 때문에 지나는 사람들이 의원님, 의원님, 하지만 야인이 된 다음에도 그럴까? 현직 때와 야인 때가 똑같다는 소릴 들으려면 돌아서는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단다.”
그는 마지막으로 까마득한 후배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을 향해 묵직한 조언을 잊지 않았다.
“정치인은 자리에 있을 때 잘해야 하고, 물러난 뒤 돌아서는 모습이 겸손하고 아름다워야 합니다. 타인을 결코 경시하지 말고, 약속은 확실히 지키며, 맡은 일에는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정직함이 정치의 기본입니다. 자리에 연연하기보다 주민의 소리를 귀찮아하지 않는 진정성을 갖추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