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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은퇴는 52세, 연금은 65세…대한민국 '13년 생계 공백’

평생 직장을 떠난 뒤에도 73세까지 일해야 하는 현실
이제 노후는 은퇴가 아닌 또 다른 노동의 시작이었다

 

용인신문 |  52세에 평생 다닌 직장을 떠난다.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는 60대 중반이다. 그 사이 약 13년.

 

한국인의 노후는 지금 이 시간을 버티는 싸움이 되고 있다. 은퇴는 더 이상 일을 끝내는 시점이 아니다. 가장 오래 몸담았던 직장을 떠난 뒤에도 생계를 위해 다시 일터를 찾아야 하고, 연금을 받기 전까지는 새로운 일자리에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시간이 됐다. 한국 사회에는 사실상 '은퇴 이후'가 아니라 '두 번째 노동인생'이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이 발표한 '퇴직 후 중·고령층의 재취업과 일자리 특성 분석' 보고서는 우리 사회 노후의 민낯을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고령층이 가장 오래 근무한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평균 연령은 52.9세였다. 법정 정년인 60세보다도 7년 이상 빠르다. 반면 앞으로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답한 연령은 평균 73.4세였다. 평생직장을 떠난 뒤에도 20년 넘게 노동시장을 떠나지 못하는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퇴직 시기와 국민연금 수급 시기 사이에 생기는 긴 소득 공백과 맞닿아 있다. 국민연금 수급 연령이 단계적으로 늦춰지면서 상당수 근로자는 직장을 그만둔 뒤 연금을 받기까지 평균 13년 안팎의 기간을 버텨야 한다. 퇴직은 했지만 연금은 아직 시작되지 않는 이 시간은 소득이 끊기는 공백기이자 새로운 생계 전쟁의 시작이다. 결국 재취업은 선택이 아니라 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필수가 되고 있다.


실제로 중·고령층의 69.4%는 앞으로도 계속 일하기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 역시 생계였다. 근로 희망 이유로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54.4%로 가장 많았고, '일하는 즐거움'은 36.1%,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는 4.0%에 그쳤다. 노후에도 일을 계속하려는 이유가 자아실현보다 생존에 가까운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 큰 문제는 퇴직 자체가 대부분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는 점이다.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난 이유를 보면 사업 부진이나 휴·폐업이 28.7%로 가장 많았고 건강 문제 18.6%, 가족 돌봄 16.0%가 뒤를 이었다. 정년을 채워 퇴직한 비율은 9.8%에 불과했다. 권고사직과 구조조정, 경영 악화 등을 포함한 비자발적 퇴직은 전체의 75.1%를 차지했다. 준비된 은퇴보다 준비되지 않은 퇴직이 훨씬 많은 구조인 것이다.


준비 없이 직장을 떠난 사람들은 곧바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국민노후보장패널 자료를 분석한 결과 퇴직자의 약 80%는 2년 안에 다시 취업했다. 특히 퇴직 후 두 달과 1년 이내 재취업이 가장 활발했다. 반면 1년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노동시장에 복귀할 가능성은 급격히 낮아졌다. 구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생산성이 낮은 인력이라는 인식이 형성되는 이른바 '낙인효과'가 작용하기 때문으로 연구진은 분석했다.

 

 

재취업의 문은 열려 있었지만 일자리의 질은 연령에 따라 크게 달랐다. 60대는 임금근로자와 정규직 비중이 증가하고 사회보험 가입률과 임금 수준도 개선되는 흐름을 보였다. 2009년 이후 실질임금 증가율은 60대가 약 80%로 가장 높았다. 그러나 70대에 들어서면 계약직과 시간제 근로 비중이 크게 늘었고 사회보험 가입률은 낮아졌다. 오래 일할수록 안정적인 일자리보다 불안정한 일자리에 머무를 가능성이 커지는 구조가 확인됐다.


연금 수준 역시 재취업 여부를 좌우했다. 국민연금 수급자는 연금 미가입자보다 노동시장에 계속 남으려는 경향이 강했던 반면 공무원연금 등 상대적으로 연금액이 높은 특수직역연금 수급자는 연금액이 많을수록 재취업 확률이 낮아졌다. 이는 국민연금만으로는 노후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고령층 정책의 초점을 단순히 일자리 수를 늘리는 데 맞출 것이 아니라 퇴직 이후 노동시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데 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퇴직 직후에는 맞춤형 상담과 신속한 일자리 매칭을 지원하고, 장기 미취업자에게는 직업훈련과 고용보조금을 집중하는 단계별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은퇴는 오히려 빨라지고 있다. 문제는 퇴직 이후부터 연금을 받기 전까지 이어지는 13년이다. 이 시간은 제도가 충분히 책임지지 못하는 공백이며, 많은 중·고령층이 다시 노동시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의 노후는 이제 은퇴의 시대가 아니라 생계를 위해 다시 일해야 하는 '두 번째 노동인생'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