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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천년 거목’에 첨단산업 접목해야

용인신문 | 어둠이 짙게 깔린 처인구 원삼면 일대,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현장은 불야성을 이루며 용인의 역동적인 내일을 보여주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적한 농촌이었던 이 도시는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미래 문명의 심장부로 상전벽해의 전환을 맞고 있다.

 

1000조 원 규모의 거대한 투자가 쏟아지는 ‘첨단의 빛’은 용인 시민 모두의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역사적 쾌거다. 하지만 거대한 공장의 굴뚝과 화려한 스카이라인만으로 위대한 명품 도시가 완성될 수 있을까. 도시의 진정한 품격은 눈에 보이는 외형적 성장을 넘어, 그 땅에 깊숙이 뿌리내린 역사와 사람의 향기, 즉 문화예술의 결에서 우러나온다.

 

우리는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며 용인이 품고 있는 웅장한 인문학적 정체성을 너무나 오래 잊고 지냈다. 그저 놀이공원이나 관광지로만 소비하기엔 아까운 도시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용인을 한국 문학사를 수놓은 거성들이 영면한 거대한 ‘정신의 도서관’이라고 불러왔다.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鎮川 死居龍仁)’이란 옛말은 단순히 풍수지리적 명당을 넘어, 영원한 안식을 내어주는 용인 대지의 포용력을 뜻한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 현대소설의 거목 박완서, 근대문학의 개척자 최남선을 비롯해 ‘오발탄’의 이범선, ‘고향의 봄’ 이원수 작가 등 수많은 문학의 별들이 용인의 흙으로 돌아가 안식을 취하고 있다.

 

역사적 지성의 뿌리도 깊다. 조선 후기 고전 판타지의 정점인 남영로의 『옥루몽』, 이사주당의 세계 최초 체계적 태교 철학서 『태교신기』, 류희의 방대한 백과사전 『물명고』 등 혁신적 지성이 용인에서 피어났다. 탁상공론을 배격하고 백성의 삶을 이롭게 하려 한 실학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은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오늘날 글로벌 첨단 산업을 이끄는 반도체 혁신의 융합 DNA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그러나 용인은 치열한 성장과 개발의 속도전에 밀려 인문학적 가치는 늘 뒷전이었다. 이제는 뼈아픈 성찰과 철학적 대전환이 필요하다. 반도체가 용인의 미래 경제 경쟁력을 창출하는 차가운 하드웨어라면, 문학과 예술은 시민의 마음을 연결하고 도시의 영혼을 채우는 따뜻한 소프트웨어다.

 

용인특례시의 중대한 과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척박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잠들어 있는 문학 거장들의 숨결을 잇는 ‘문학 순례길’을 다듬어야 한다. 또한 『옥루몽』과 『태교신기』의 훌륭한 서사를 메타버스와 가상현실(VR) 등 용인이 지닌 첨단 디지털 기술과 과감히 결합하여 청년과 시민의 일상 속에 생생한 콘텐츠로 되살려내야 한다.

 

도시는 삭막한 콘크리트 빌딩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천년을 이어온 문화예술의 서정적 바탕 위에 반도체의 혁신적 기술을 입히는 일. 그것이 ‘첨단의 빛’을 넘어 ‘천년의 결’을 지닌 세계적인 역사문화예술도시로 도약하는 용인의 가장 확실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