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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월급 대신 지역화폐?
'임금의 현금 원칙’ 흔드는 법안에 노동계·정치권 동시 반발

노사 합의 시 성과급 일부 지역화폐 지급 허용 추진
"지역경제 살리기" vs "노동자 재산권 침해" 정면충돌

 

용인신문 | 민주당이 근로자의 성과급이나 상여금 일부를 지역화폐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임금의 본질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과 노동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정책 목적과 노동자의 재산권·임금 선택권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양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임금은 반드시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의 원칙에 예외를 둘 것인가에 있다. 법안은 근로자의 명시적인 동의를 전제로 성과급 등 임금 일부를 지역사랑상품권 등 지역화폐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역 내 소비를 늘려 골목상권을 살리고, 기업의 성과급이 지역경제로 다시 순환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박민규 의원은 노사 간 합의가 전제되는 만큼 강제성이 없고, 지역경제 선순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외국인 근로자의 해외 송금 비중이 높은 일부 산업에서는 지역 내 소비를 확대하는 정책적 효과도 기대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노동계의 시각은 정반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법안이 현실의 노사관계를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전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계약서에 동의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자유로운 의사결정이라고 보기 어렵고, 승진이나 인사평가 등을 의식하는 근로자는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개정안이 지역사랑상품권뿐 아니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다른 지급수단까지 허용할 수 있도록 폭넓게 규정한 점도 우려하고 있다. 지급 비율이나 대상에 대한 명확한 제한 없이 시행령으로 범위를 확대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역시 즉각적인 철회를 요구했다. 한국노총은 임금은 노동의 대가이자 개인의 재산으로, 노동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근로자의 임금을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국민의힘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은 이해하지만, 임금 지급 원칙을 흔드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법안이 실제 현장에서 노동자의 선택권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며, 재산권 침해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지적했다.

 

이번 논쟁은 단순히 지역화폐 사용 여부를 넘어 우리 사회가 임금을 어떤 가치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근로기준법이 오랫동안 임금을 통화로 직접 지급하도록 규정한 이유는 노동자의 생계와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반면 지방소멸과 지역경제 침체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지역 내 소비를 확대할 새로운 정책 수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도의 실효성보다 노동자의 자율성이 더욱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형식적인 동의가 아니라 실질적인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법 시행 과정에서 적지 않은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안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 수정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이번 논란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노동자 권익 보호라는 두 정책 목표가 충돌할 때 어디까지 국가가 임금 지급 방식에 개입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새로운 사회적 논쟁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