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5 (수)

  • 흐림동두천 24.1℃
  • 흐림강릉 27.1℃
  • 서울 24.4℃
  • 대전 25.6℃
  • 흐림대구 28.3℃
  • 흐림울산 27.6℃
  • 흐림광주 26.5℃
  • 흐림부산 26.3℃
  • 구름많음고창 25.6℃
  • 구름많음제주 28.7℃
  • 구름많음강화 23.6℃
  • 흐림보은 25.2℃
  • 흐림금산 26.0℃
  • 맑음강진군 26.6℃
  • 흐림경주시 29.5℃
  • 흐림거제 25.8℃
기상청 제공

배아 많이 넣는다고 임신 잘될까? IVF의 상식이 바뀐다

정부, 난임시술 배아이식 기준 10년 만에 손질…'많이 넣는 시대'에서 '좋은 배아 한 개' 시대로

 

용인신문 | 시험관아기 시술에서 "배아를 많이 넣을수록 임신이 잘된다"는 오랜 상식이 바뀌고 있다. 정부가 난임 지원사업에 적용하는 배아이식 기준을 10여 년 만에 개정하기로 하면서 단순히 배아 개수를 줄이는 정책을 넘어 국내 난임 치료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의 생식의학은 '몇 개를 넣느냐'보다 '가장 건강한 배아를 언제 이식하느냐'가 임신과 출산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라고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난임시술 건강보험 기준인 배아이식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행 기준은 35세 미만 여성의 경우 2~4일 배양한 배아는 최대 2개, 5~6일 배양한 배반포는 1개까지 이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35세 이상은 각각 최대 3개와 2개까지 허용한다. 정부는 다태임신으로 인한 고위험 출산과 미숙아 증가를 줄이기 위해 이식 가능한 배아 수를 더 줄이는 방향으로 의료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정부의 이번 움직임은 늦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변화라는 평가라고 국내 난임의사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러나 이번 논의에서 더 중요한 것은 '배아 개수를 줄인다'는 정책이 아니라 '많이 넣는 것이 정말 임신에 유리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과거에는 착상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배아를 두 개, 세 개 이식하는 경우가 흔했다. 수정란이 많을수록 그중 하나는 착상할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였다. 하지만 최근 국제 연구들은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좋은 예후를 가진 환자에서는 건강한 배아를 한 개씩 순차적으로 이식하는 전략이 배아 두 개를 동시에 이식하는 것과 비교해 최종 출산율은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더 우수하면서도 쌍둥이와 세쌍둥이 임신은 크게 줄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착상률과 출산율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배아를 여러 개 이식하면 초기 착상 가능성은 다소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착상이 곧 건강한 출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착상 이후에도 유산, 조산, 임신중독증, 미숙아 출산 등 수많은 변수가 남아 있다. 난임 치료의 최종 목표는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이 아니라 건강한 아기 한 명을 무사히 출산하는 것이다.


시험관아기 시술은 흔히 네 단계를 거친다. 첫째 난자와 정자가 만나고, 둘째 수정이 이뤄지며, 셋째 건강한 배아로 발달하고, 넷째 자궁내막에 착상해야 한다. 체외수정 기술은 첫 번째와 두 번째 과정은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배아의 생존 능력과 착상은 여전히 배아의 질과 자궁 환경에 크게 좌우된다. 배아를 여러 개 넣는다고 이 과정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배아를 한 번에 이식하는 전략은 치료 기회를 줄일 수도 있다. 배아 두 개를 동시에 이식했다가 모두 착상하지 못하면 한 번의 시도로 두 개의 기회를 모두 잃는다. 반대로 양질의 배아를 하나씩 순차적으로 이식하면 각각 독립된 착상 기회를 확보할 수 있어 누적 출산율을 높이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최근 세계 주요 난임센터들이 단일배아이식을 적극 권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배아이식은 의료적으로도 적지 않은 위험을 안고 있다. 두 개 이상의 배아가 모두 착상하면 쌍둥이나 세쌍둥이 임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태임신은 축복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산부인과에서는 대표적인 고위험 임신이다. 단태아의 평균 임신 기간은 약 40주지만 쌍둥이는 37주, 세쌍둥이는 32주 안팎에 출산하는 경우가 많다. 조산과 저체중아, 임신중독증, 신생아중환자실 입원 위험도 크게 높아진다.


여러 개의 배아가 모두 착상했을 경우에는 의학적 판단에 따라 태아 수를 줄이는 선택적 감수술이 필요한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산모에게 신체적·심리적 부담을 주고, 남아 있는 태아에게도 일정 수준의 위험을 동반한다. 결국 처음부터 불필요한 다태임신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치료 전략이라는 것이 최근 생식의학계의 공통된 견해다.


일부 연구에서는 상급 배아와 발달이 다소 떨어지는 배아를 함께 이식할 경우 자궁내막과 배아 사이의 상호작용이 달라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직 추가 연구가 필요한 분야지만, 최근 난임 치료는 배아의 '개수'보다 '질'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는 상태가 좋은 배아가 확보된 경우 선택적 단일배아이식(elective Single Embryo Transfer, eSET)을 표준 치료로 권고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배양기술과 동결기술, 배아 선별기술이 발전하면서 굳이 여러 개의 배아를 동시에 이식해야 할 이유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국내에서 IVF(시험관아기 시술)을 가장 많이 시행한(9만사례 이상) 난임의사로써 국내 최다 출산율을 기록한바 있는 이성구 대구마리아 원장은 19년째 단일배아이식을 실천하면서 "시험관아기 시술의 성공은 몇 개를 넣었느냐가 아니라 가장 건강한 배아를 제대로 잘 선발해서 이식했느냐에 달려 있다"며 "배양기술력이 좋아지면 '정확하게 한 개를 선택하는 치료'가 표준이 될 수 있다"고 강하게 설명했다.


이처럼 정부의 배아이식 기준 개정은 단순히 숫자를 줄이는 행정 조치가 아니다. 임신 성공률 경쟁에서 벗어나 산모와 아기 모두가 안전한 출산을 목표로 하는 난임 치료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제 시험관아기 치료의 성공은 배아의 개수가 아니라 건강한 생명 하나를 끝까지 지켜내는 데 있다는 사실을 의료 현장도, 환자도 함께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