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해가 지자 용인의 골프장들이 하나둘 불을 밝혔다. 낮 동안 달궈졌던 페어웨이는 조명 아래 서서히 식었고, 퇴근길 차량 행렬이 지나간 뒤 골프백을 실은 차들이 다시 처인구와 기흥구 골프장 방향으로 몰렸다. 예전 같으면 하루 영업을 마칠 시간이지만, 요즘 골프장은 밤이 또 하나의 피크타임이다.
국내 골프 8학군 용인지역에 ‘가성비 골프’ 바람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폭염을 피해 조금이라도 시원한 시간에 라운드하려는 수요와, 비싼 그린피·캐디피 부담을 줄이려는 알뜰 소비가 맞물리면서 야간 라운드가 새로운 골프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최근 환율 상승과 치안 불안 등으로 동남아 해외 골프 수요까지 국내 야간 라운드로 급선회하면서 열기를 더하는 모양새다.
△ 전국 골프장 ‘두 곳 중 한 곳’ 밤샘 영업
용인은 이 흐름을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도시다. 용인시 관광자료 기준 관내 골프장은 28곳, 630홀 규모로 회원제 18곳, 대중제 10곳이 운영되고 있다.
처인구에만 20곳, 기흥구에 8곳이 몰려 있다.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골프장 밀집 도시인 만큼, 야간 골프 확산은 단순한 레저 트렌드가 아니라 지역 상권과 교통, 일자리, 생활 패턴까지 흔드는 변화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발간한 ‘레저백서 2026’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전국 야간영업 골프장은 250곳으로, 군 골프장을 제외한 전체 골프장 529곳의 47.3%에 이른다.
2021년 166곳이던 야간영업 골프장은 5년 만에 84곳 늘었다. 전국 골프장 두 곳 중 한 곳이 밤에도 손님을 받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야간 라운드의 가장 큰 무기는 가격이다. 주간보다 그린피가 낮고, 노캐디나 캐디선택제를 이용하면 1인당 수만 원을 아낄 수 있다.
골프 한 번 치는 데 그린피, 카트비, 캐디피, 식사비까지 더하면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야간 라운드는 ‘골프는 계속 치되 지출은 줄이려는’ 소비자들의 실속 있는 선택지가 됐다.
△ 환율·항공료 폭탄 … 발길 돌린 ‘동남아 골프족’
특히 최근에는 국내 골퍼들의 ‘해외 골프 휴양 성지’로 불리던 태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 수요가 위축된 점도 국내 야간 라운드 활성화에 한몫하고 있다.
실제 태국 관광청 및 항공 업계에 따르면 최근 태국을 방문하는 전체 한국인 관광객 수가 전년 동기 대비 약 1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의 동남아 방문 수요가 부진했던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환율 변동이 치명적이었다. 최근 외환시장에서 태국 바트화가 강세를 유지한 반면 대한민국 원화는 상대적인 약세를 면치 못했다.
이로 인해 국내 골퍼들이 현지에서 체감하는 소비 비용 부담이 가중되면서, 가성비를 무기로 삼던 해외 골프 패키지 여행 수요가 직격탄을 맞았다.
항공료 상승도 발목을 잡았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라 유류할증료가 인상되면서 전반적인 해외 항공권 가격이 치솟았고, 이는 해외 여행 심리를 크게 위축시켰다. 다만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한 중국과 일본 여행객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올해 1~5월 인천공항 국제선 이용객은 총 3241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7% 이상 증가했지만, 베트남과 태국 등 동남아 노선은 지난해 같은 기간 863만 명에서 올해 821만 명으로 4.8% 감소했다.
여기에 캄보디아 및 태국 지역에서 중국인 관광객 및 범죄 관련 뉴스(납치 및 보이스피싱 조직 관련 보도)가 잇따라 확산되면서, 아시아 전체 관광 시장에 심리적 악영향을 미쳤다.
이렇다 보니 동남아 지역으로 몰리던 ‘가성비 골프 수요’가 결국 접근성이 좋고 비용 부담이 덜한 용인지역 야간 라운딩으로 유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골프장 생존 전략 … 용인 여름밤 풍경 바꿔
골프장 입장에서도 야간영업은 놓칠 수 없는 카드다. 코로나19 특수가 끝나며 국내 골프장 수익성이 예전 같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기존 코스와 조명·운영 인력을 활용해 유휴 시간대를 매출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도 ‘레저백서 2026’에서 고물가와 비싼 그린피 등으로 인해 국내 골프장 수익률이 위축될 가능성을 짚은 바 있다.
특히 대중형 골프장이 야간영업 확대를 주도하고 있다. 회원 중심의 프라이빗 골프장은 코스 관리와 회원 서비스를 이유로 야간 운영에 소극적인 반면, 대중형 골프장은 가격 경쟁과 회전율이 중요해 야간 라운드 확대에 적극적이다.
용인처럼 골프장 수가 많고 수도권 접근성이 좋은 지역에서는 이런 변화가 더 빠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기후 환경의 변화도 판을 바꾸고 있다. 여름 낮 기온이 치솟으면서 한낮 라운드는 체력 부담은 물론 온열질환 위험까지 키운다. 반면 야간 라운드는 폭염을 피할 수 있고, 직장인들은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골프가 ‘하루를 비우는 운동’에서 ‘퇴근 후 즐기는 레저’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다만 야간 골프 확산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명·소음·교통량 증가에 따른 주민 불편, 늦은 시간 캐디와 직원 근무 부담, 잔디 관리 문제는 지역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골프장이 많은 용인에서는 야간영업 확대가 지역경제의 기회인 동시에 생활환경 관리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
결국 밤 골프의 확산은 고물가·고환율 시대 소비자의 생존 전략이자, 골프장 산업의 수익 전략이다.
전국 최다 수준의 골프 인프라를 가진 용인은 이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낮에는 반도체와 출퇴근 도시로 움직이고, 밤에는 골프장 조명이 밝게 켜지는 도시. 용인의 여름밤 풍경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사진설명 : 야간라운딩을 즐기는 골퍼들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