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서울의 직장인 김모(52) 씨는 최근 건강검진에서 공복혈당이 크게 올랐다는 결과를 받았다. 특별히 야식을 먹지도 않았고 탄산음료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대신 더위가 시작되면서 점심은 거의 매일 콩국수였고, 갈증이 날 때마다 수박주스와 참외주스를 마셨다. "여름 음식은 건강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혈당이 이렇게 오를 줄은 몰랐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무더위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차갑고 시원한 음식을 찾는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여름 음식=건강식'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영양학과 내분비내과 전문의들은 오히려 여름철이 혈당 관리가 가장 어려운 계절 가운데 하나라고 경고한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선택한 음식 상당수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혈당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음식이 콩국수다. 많은 사람들은 콩이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단백질 음식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혈당을 좌우하는 것은 국물이 아니라 면이다. 콩국수 한 그릇에는 상당량의 밀가루 면이 들어가는데, 밀가루 전분의 대부분은 체내에서 빠르게 포도당으로 분해되는 아밀로펙틴 성분이다. 이 성분은 소화와 흡수가 매우 빨라 식후 혈당을 급격하게 높인다.
비빔국수와 냉면, 잔치국수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차갑게 먹는다고 해서 혈당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 끼에 면을 많이 먹기 쉬워 탄수화물 섭취량이 크게 늘어난다. 여기에 설탕이 들어간 양념장이나 국물까지 더해지면 혈당 상승은 더욱 가팔라진다.
여름 과일 역시 안심할 수 없다. 수박과 참외, 복숭아는 수분이 많아 부담이 적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과일 속 과당과 포도당은 적지 않은 혈당 변화를 일으킨다. 특히 통째로 먹는 대신 믹서기에 갈아 주스로 마시면 상황은 더욱 달라진다. 식이섬유 구조가 파괴되면서 위를 빠르게 통과하고 장에서 당이 순식간에 흡수되기 때문이다. 같은 과일이라도 씹어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혈당 반응이 크게 다를 수 있다.
보양식도 예외는 아니다. 복날이면 찾는 삼계탕은 단백질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닭고기와 찹쌀, 국물까지 모두 섭취하면 열량이 1000㎉ 안팎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감자와 옥수수, 고구마 역시 건강식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탄수화물 비중이 높아 과다 섭취하면 혈당 관리에는 불리하다.
실제로 당뇨 환자들이 병원에서 가장 많이 듣는 조언은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이다. 식사를 거른 뒤 한 번에 많이 먹거나, 누룽지와 밥을 물에 말아 간단히 해결하는 식습관은 탄수화물만 집중적으로 섭취하게 만들어 혈당을 급격히 올린다. 반대로 채소와 단백질, 지방을 함께 먹으면 음식이 천천히 소화돼 혈당 상승 속도를 늦출 수 있다.
혈당이 반복적으로 급등하면 문제는 단순히 숫자에 그치지 않는다. 과도하게 분비된 인슐린은 남은 포도당을 지방으로 저장하고, 높은 혈당은 혈관 안을 흐르는 적혈구와 결합해 혈관과 신경을 서서히 손상시킨다. 시간이 지나면 눈과 콩팥, 말초신경, 심혈관계까지 영향을 받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환자보다 '예비 환자'가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국내 통계에 따르면 30세 이상 성인 약 10명 가운데 4명은 당뇨병 전 단계에 해당한다. 공복혈당이 100~125㎎/dL이거나 최근 2~3개월 평균 혈당을 보여주는 당화혈색소가 5.7~6.4%이면 당뇨병 전 단계로 분류된다. 대부분 특별한 증상이 없어 자신이 위험군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희망적인 점도 있다. 당뇨병 전 단계에서는 생활습관만 바로잡아도 상당수가 정상 혈당으로 돌아갈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체중의 5~10%만 줄여도 인슐린 저항성이 크게 개선되고 당뇨병 진행 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규칙적인 걷기 운동과 근력운동을 병행하고, 면류와 주스 대신 통곡물과 채소,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이다.
이미 당뇨병 진단을 받은 환자도 지나친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 약물과 인슐린 치료는 혈당을 안정적인 수준으로 되돌리는 과정이며, 이후 체중 감량과 식습관 개선, 꾸준한 운동이 이어지면 약물 용량을 줄이거나 일부 환자에서는 중단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무더위가 계속될수록 사람들은 더 시원한 음식을 찾는다. 그러나 몸이 원하는 '시원함'과 혈당이 감당할 수 있는 '안전함'은 다를 수 있다. 여름철 건강을 지키는 첫 번째 원칙은 많이 먹는 보양식보다 혈당이 천천히 오르는 식탁을 만드는 것이다. 폭염보다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은 뜨거운 날씨가 아니라, 여름 음식이 남기는 조용한 혈당의 상승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