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술은 하루 만에 깨지만, 술이 남긴 흔적은 수십 년을 버틴다.
20대 시절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반복했던 술자리가 중년에 접어든 뒤 뇌 기능 저하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당장은 멀쩡해 보여도 뇌는 그 기억을 지우지 못했고, 오랜 금주 뒤에도 손상은 남아 있었다. 젊은 날의 폭음이 미래의 뇌에 '시간차 청구서'를 보내는 셈이다.
현대인의 음주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취업난, 직장 스트레스, 인간관계 갈등 속에서 "술 한잔으로 털어버리자"는 문화가 일상이 됐다. 문제는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해 선택한 술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견디는 뇌의 능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매사추세츠대 애머스트 연구진은 초기 성인기에 만성 스트레스와 반복적인 과음을 함께 경험한 경우, 오랜 금주 이후에도 중년기에 인지 기능 저하가 나타났다고 최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알코올: 임상 및 실험 연구'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사람과 신경계 구조가 유사한 생쥐를 이용해 젊은 시절 스트레스와 알코올에 반복적으로 노출시킨 뒤 충분한 금주 기간을 거쳐 중년기에 뇌 기능을 분석했다.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단순히 기억력이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상황에 맞춰 행동을 수정하고 판단을 바꾸는 능력인 '인지 유연성'이 크게 감소했다. 운전 중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응하거나, 새로운 업무 방식에 적응하거나, 감정을 조절하며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능력이 모두 이 기능과 관련된다. 나이가 들수록 삶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인지 능력이다.
연구진은 특히 뇌간의 '청반(Locus Coeruleus)'에 주목했다. 이곳은 스트레스와 각성, 집중력, 의사결정을 조절하는 뇌의 핵심 중추다.
정상적인 뇌는 스트레스가 끝나면 다시 균형을 되찾는다. 그러나 젊은 시절 과음과 만성 스트레스를 함께 경험한 실험군에서는 청반의 회복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세포를 손상시키는 산화 스트레스도 크게 증가했고, 일부 변화는 알츠하이머병 초기 뇌에서 관찰되는 양상과 유사했다.
더 주목되는 것은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몇 달 동안 술을 완전히 끊은 뒤에도 뇌 변화는 거의 회복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중년 이후 다시 술을 찾게 만드는 원인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도 제시했다. 술을 끊었는데도 뇌는 이미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연구는 동물실험인 만큼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신중한 해석이 필요하다. 다만 전문가들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반복적으로 술을 마시는 습관 자체가 뇌 회로를 바꿀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술에 관대하다. 회식 문화는 줄었지만 '혼술'과 '스트레스 음주'는 오히려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질병관리청 통계에서도 20·30대 음주율은 다소 감소하는 추세지만, 스트레스를 술로 해결하려는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운동을 하면 근육에 기억이 남는다고 한다. 술도 마찬가지다. 술은 잔 속에서는 사라질지 몰라도, 뇌는 그 시간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수십 년 뒤, 판단력과 적응력, 삶의 질이라는 형태로 조용히 되돌아올 수 있다. 젊은 날의 술값은 술집 계산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래의 뇌가 대신 치를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