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최근 이동·남사읍 일대에 조성되는 국가 첨단 전략산업 특화단지, 이른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부지 내 유적 보존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뜨겁다. 특히 조선 초기부터 자리를 지켜온 의령남씨(宜寧南氏) 종중 묘역의 이전과 발굴 조사는 단순한 문중의 일을 넘어, 우리 용인이 마주한 ‘문화적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용인은 지난 30여 년간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었다. 수지, 기흥을 거쳐 이제는 처인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택지 개발과 산업단지 조성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유구와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소중한 역사적 자산들 중 용인에 온전히 뿌리 내린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수장고와 전시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 땅에서 출토된 국보급 유물들은 국립박물관이나 대학 박물관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를 두고 학계와 시민들 사이에서 ‘유물의 망명’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체성은 땅의 기억에서 비롯되거늘, 기억의 파편들을 외지에 맡겨둔 채 110만 대도시의 자긍심을 논하기엔 무리가 있다.
현재 기흥구에 위치한 용인시박물관이 있지만, 그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본래 특정 지구의 유적을 보존하기 위한 ‘유적전시관’으로 건립되었다. 110만 인구가 향유해야 할 인문학적 가치를 담아내고, 쉼 없이 쏟아지는 지역 유물을 체계적으로 수집·연구·보존하기에는 공간과 기능 면에서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단순히 유물을 진열하는 ‘관람용 공간’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를 발굴하고 미래 세대에게 용인의 정신을 전수하는 ‘종합 시립박물관’이 절실하다. 이는 도시의 품격을 결정짓는 문화적 인프라의 핵심이다.
이번 반도체 국가산단 조성은 용인의 경제적 지도를 바꿀 거대한 기회다. 동시에 이는 우리 땅 밑에 잠든 역사를 마주할 마지막 시험대이기도 하다. 의령남씨 묘역을 비롯해 이 일대에서 출토될 유물들은 용인의 중세와 근세를 잇는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다.
만약 이번에도 준비 부족을 이유로 유물들을 다시 외지로 보낸다면, 우리는 후대에 ‘경제 성장을 위해 역사를 팔아치운 세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적인 반도체 도시로 도약하는 용인에 걸맞은 것은 거대한 공장뿐만이 아니다. 그 공장이 들어선 땅의 원래 주인들이 누구였는지,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증명해 줄 품격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늦었지만 지금이 적기다. 오는 7월 시작되는 민선 9기에서는 110만 용인시민의 문화적 자존심을 세우고, 흩어진 우리의 역사를 다시 불러모으기 위한 ‘용인시립박물관’ 건립에 시정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경제의 엔진이 반도체라면, 도시의 심장은 문화여야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