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중동 정세의 전면전 확산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전례 없는 위기가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흔들며 국내 산업계와 건설 현장에 ‘퍼펙트 스톰(재난 수준의 복합 위기)’을 몰고 오고 있다.
원유 수급 불안으로 시작된 불씨는 석유화학 기반의 핵심 건설 자재 폭등과 수급 부족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국가 전략 사업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지역 도로 건설 현장까지 멈춰 세울 기세다.
이번 위기의 핵심은 중동 정유 시설 타격으로 인한 기초 원자재 ‘나프타(Naphtha)’의 수급망 붕괴다.
나프타를 열분해해 얻는 에틸렌과 프로필렌은 현대 건축의 필수 소재인 PVC(창호·배관), 바닥재, 단열재(스티로폼·PF보드), 페인트 등을 만드는 뿌리 원료다.
현재 관련 자재 단가는 품목별로 10%에서 최대 40%까지 폭등하며 공급 대란이 현실화 됐다.
레미콘의 강도를 높이는 화학 혼화제마저 나프타 기반으로 제조되다 보니, 건설 현장에서는 “웃돈을 줘도 물건 자체를 구하지 못해 공정이 멈춰 설 판”이라는 비명이 터져 나온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33.69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본격적인 전쟁 여파가 반영될 하반기에는 오름폭이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 발 묶인 도로 건설… 용인시 관급 자재 수급 ‘비상’
직격탄은 공공 인프라 사업인 도로 건설 현장으로 번졌다. 도로 포장의 핵심 자재인 아스팔트(아스콘)는 원유 정제 과정의 부산물로 만들어지는데, 유가 급등과 원료 부족으로 생산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현재 용인시의 경우 처인구 120여 곳을 비롯해 기흥구 60여 곳, 수지구 15곳 등 총 200개소에 도로 건설 및 정비 사업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아스콘 관급 자재 공급이 사실상 끊기면서 공정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일부 현장에서는 고육지책으로 관급보다 훨씬 비싼 ‘사급 자재’를 끌어다 쓰고 있지만, 이는 고스란히 지역 영세 공사업체의 막대한 비용 부담과 채산성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공사업자는 “공사 기간이 늘어나는 것보다 하루라도 빨리 공사를 마무리 하는 것이 손해를 덜 보게 되는 상황”이라며 “문제는 아스콘 수급 부족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 반도체 클러스터도 ‘자재 확보’ 전쟁
국가적 명운이 걸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처인구 원삼면에 조성 중인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와 이동·남사읍의 국가산단 배후 신도시 현장 등은 자재 확보를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대형 건설사들은 수입에 의존하는 특수 마감재와 플랜트 기자재의 해상 운송로가 막히자 가상 시나리오를 가동하며 비상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전망은 어둡다. 당초 조기 종전을 기대했던 시장의 바람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통해 “향후 2~3주간 강력한 타격을 가해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겠다”며 장기전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에너지 대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가 길어질수록 유가와 환율, 물류비의 연쇄 상승은 건설사의 원가율을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밀어낼 가능성이 크다.
■ 실생활로 번진 파장
산업계의 비상은 곧 국민 실생활의 고통으로 직결되고 있다. 경유 가격이 리터당 1900원을 넘어서면서 덤프트럭과 크레인 등 중장비 가동 비용이 치솟았고, 이는 곧 아파트 분양가 상승과 주택 공급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과 용인 등 주요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공기 연장과 공사비 증액 문제를 놓고 시공사와 조합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한 리모델링 조합원은 “먼 나라 전쟁 때문에 자재가 안 와서 현장이 멈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추가 분담금이 수억 원씩 늘어날까 봐 밤잠을 설친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의 충격을 넘어설 것으로 경고한다.
특히 에너지 가격 상승은 물류비와 제조 원가를 동시에 밀어 올려 전방위적인 소비자 물가 인상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기와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 압박은 물론, 석유화학 기반의 생활용품과 비료 가격 상승에 따른 농산물 가격 폭등 가능성까지 제기되며 서민들의 장바구니 경제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실정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김태준 연구위원은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이 금리 인하 기대감을 꺾고 시장 금리를 밀어 올리면, 부동산 PF 부실과 차입 비용 상승이라는 치명적인 악순환이 발생할 것”이라며 “정부 차원의 유연한 계약 금액 조정과 공기 연장 등 합리적인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