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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이슈 디섹션(Issue Dissection)

전쟁과 선거, 이기는 자는 싸우지 않는다?

오룡(조광조 역사연구원 원장/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과거와 현재의 유사성을 들어 역사의 회귀를 말하지만, 엄밀히 말해 똑같은 사건은 절대 재현되지 않는다. 시대마다 기술의 층위가 다르고, 주체가 지닌 가치관과 환경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500년 전의 화포가 오늘날의 데이터 알고리즘과 프레임 전쟁으로, 과거 군주의 결단이 현대 유권자의 표심으로 치환되었듯 말이다.

 

다만 그 변주(變奏)는 때로 소름 끼칠 만큼 닮았다. 시대라는 외형은 바뀌어도 ‘인간의 본성과 승부의 원형’이라는 핵심 기제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굴 제국의 바부르가 구사했던 화포라는 수단이 오늘날 다른 도구로 대체되었을 뿐, “적의 예상을 뛰어넘는 방책으로 판단력을 마비시킨다”라는 승리의 법칙은 같다. 우리가 과거를 고찰하는 이유는 어제를 답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낯선 내일 속에서도 면면히 흐르는 ‘승리의 감각’을 포착하기 위함이다.

 

1526년 파니파트 전투에서 바부르가 거둔 승리는 단순한 정복을 넘어 전쟁의 본질적 작동 원리를 통찰하게 한다. 당시 이브라힘 칸 로디는 병력과 물리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의 전쟁 관은 ‘물량의 총합’에 고착되어 있었다. 승리는 군대의 규모와 자산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선형적 사고였다. 그러나 바부르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승부를 설계했다. 그는 전쟁을 물리적 충돌이 아닌, 구조적 배치와 인식의 붕괴 문제로 통찰했다. 화약 무기의 도입은 단순한 화력의 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적의 지휘 체계와 대응 논리를 뿌리째 흔드는 ‘비대칭적 충격’이었다. 압도적인 정규군이 생경한 타격에 질려 스스로 전열을 무너뜨리는 순간, 승부의 저울추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

 

이 지점에서 『손자병법』의 명제는 생동하는 전략 원리로 되살아난다. “병자, 궤도야(兵者, 詭道也).” 전쟁은 단순한 기만이 아니라 적의 인식을 재편하는 고도의 기술이다. 이 원리는 오늘날 미국과 이란의 전쟁에서도 선명하게 투영된다.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을 보유했음에도 정면충돌이라는 고비용 구조를 회피하며 ‘벌교(伐交)’와 ‘부전이승(不戰而勝)’의 길을 택한다. 경제 제재와 사이버 전술로 상대의 선택지를 지워나가는 행위는, 바부르가 전장에 수레를 결착해 적의 기동을 봉쇄했던 ‘공간의 재구성’과 궤를 같이한다. 이에 맞서는 이란 역시 저비용 비대칭 전력을 활용해 상대의 결심을 유예한다. 이는 물리적 파괴보다 상대의 ‘집행 의지’를 억제하는 데 주력하는 현대적 전략의 변주다.

 

포연(砲煙) 속에 새겨진 승리의 법칙은 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라는 이름의 총성 없는 전장(戰場)에서 다시금 그 실체를 드러낸다. 누군가는 무력이 사라진 시대에 어찌 전쟁을 논하느냐 묻겠지만, 선거야말로 인식의 고지를 점령하려는 가장 치열한 전장이다. 선거의 본질은 ‘자원의 산술적 배분’이 아니라 ‘의미의 독점적 선점’에 있기 때문이다.

 

유능한 정치 세력은 유권자가 무엇을 투표의 척도로 삼을 것인가라는 ‘프레임’을 획정한다. 민생인가, 견제인가, 혹은 인물인가. 이 판단의 기준을 먼저 정의하는 자가 곧 바부르의 화포를 손에 쥔 격이다. 승부는 투표 당일의 개표 결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의 인식이 전환되는 그 찰나의 지점에서 이미 승패의 윤곽은 드러난다. 민심의 저변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혹은 “안정이 절실하다”라는 명제가 뿌리내렸다면 투표는 그저 확정된 결론을 추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즉, 승부는 전장 밖에서 이미 종결되어 있다.

 

역사가 똑같이 반복되지 않음에도 우리가 과거를 부단히 반추(反芻)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승리는 언제나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한 자가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전장’을 먼저 설계한 자의 것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