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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

개발에 밀려나는 역사의 거인들… 위기를 기회로

용인 화곡 의령남씨 묘역의 가치 재조명 학술대회

 

 

조선 개국 일등공신 남은 등 명문거족 잠든 곳
남이성 ‘어록해’·남영로 ‘옥루몽’ 가치 집중 조명
‘용인분묘유적공원’ 조성 유산 보존 방안은 숙제

 

용인신문 | 조선 전기 정치사와 후기 예술·문학사를 관통하는 ‘살아있는 박물관’, 용인 화곡(꽃골) 의령남씨 묘역의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는 첫 학술의 장이 열렸다.

 

용인신문사가 주최하고 의령남씨 강무공파·찬성공파 종중이 후원한 ‘용인 화곡 의령남씨 묘역의 가치 재조명’ 학술대회가 지난 22일 용인시청 에이스홀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번 행사는 삼성반도체 국가산업단지 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화곡 묘역의 문화적 자산을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 조선 건국부터 문학·예술까지… '의령남씨'가 남긴 족적

남기혁 교수(국립군산대)가 사회 및 좌장을 맡은 이날 대회에서 성당제 박사(전 규장각한국학연구원)는 기조발표를 통해 의령남씨와 용인의 인연을 짚었다. 조선 개국 일등공신인 강무공 남은을 시작으로, 증 좌찬성 남식 이후에 화곡에 잠든 인물 계보를 설명하며 이곳이 조선 명문거족의 핵심 세장지임을 강조했다. 증 영의정 남일성, 예조판서 남이성, 회은공 남학명, 남영로, 남계우 등 역사의 거인들이 잠들어 있다.

 

 

김성태 박사(아주대)는 묘역의 풍수지리적·학술적 희소성과 중요성을 역설했다. 김 박사는 “남은 묘역은 명당의 조건인 주산과 안산 등 풍수적 요건을 완벽히 갖춘 음택 풍수의 전형”이며, 특히 조선 초기 풍수 인식을 보여주는 ‘강무공묘산도’가 전해져 무덤 조성 당시인 조선초기의 풍수지리적 인식을 엿볼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남은의 묘표 글씨는 조선 중기 문신·학자며 서예가인 예조판서 남용익이 썼고, 남식 묘표명 글씨는 손자이자 영의정을 지낸 약천 남구만의 글씨로 두 기의 묘표는 서예사적 가치가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약천 남구만이 요절한 딸을 위해 조성한 ‘상녀(殤女)의 묘’에 대한 학술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이곳 상녀의 묘는 묘표를 갖춘 실녀(室女)의 무덤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희소성이 인정되며, 특히 아버지 남구만이 지은 묘표문에 지석을 넣었다고 기록돼 있어 문화유산의 보존과 보호 차원에서 학술적 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뿐만아니라 남은 묘역의 묘제는 묘표를 봉분의 앞이 아닌 오른쪽에 세운 점, 고석 대신 장대형의 고임돌로 상석을 받친 점, 문인석은 모두 금관조복형의 복식인 점 등에서 고유성이 인정돼 소론계 묘장의 전형일 수 있음을 제시했다.

 

■ 국어학·철학·예술을 아우르는 학술적 보고(寶庫)

이어진 보충 발표 형식의 종합토론에서는 화곡 묘역 인물들이 남긴 방대한 학술 성과가 공유됐다. 김양진 교수(경희대)는 ‘남이성 『어록해』의 학술적 위상과 가치’에서 17세기 근대국어의 보고인 남이성의 『어록해』를 통해 당시 방언 차이를 분석했다. 류준경 교수(성신여대)는 ‘한국 고전소설의 총결산, 『옥루몽』’을 통해 조선시대 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필력을 발휘하여 최고 수준의 작가적 역량을 발휘한 작품이라고 평가했고, 이기대 교수(고려대)는 ‘남계우의 예술세계와 전각 문화’에서 남계우는 나비를 탁월하게 그린 화가로 남나비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인물이며, 문자조형, 서예, 문인적 정신 세계가 결합한 전각에도 탁월해 문인예술의 경지를 보여 준다고 강조했다.

 

박학래 교수(국립군산대)는 ‘약천의 유학 사상 연구 활성화를 기대하며’에서 그간의 남구만 문학 연구에 더해 유학 사상의 연구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고, 강혜선 교수(성신여대)는 ‘회은 남학명의 문학 세계’에서 숙종 조 당쟁의 소용돌이에서 소론의 영수 남구만의 아들로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고 여행과 시문 창작에 힘쓴 남학명의 문학을 심도 있게 다뤘다. 또 문화콘텐츠로 ‘남구만, 남학명 부자가 사랑한 집’에 대한 개요를 소개했다. 김종욱 교수(서울대)는 ‘현대문학 연구자가 본 『옥루몽』’에서 일본 ‘겐지 모노가타리 뮤지엄’ 사례를 들어 고전소설 ‘옥루몽 문학관’을 제안했다. 서길덕 원장(도원문화유산연구원)의 ‘남은 묘역의 학술적 기대’와 김용국 원장(아시아문화연구원)의 ‘한 집안의 기억이 한 지역의 역사로-꽃골 의령남씨 이야기’에서는 발굴에 따른 학술적 기대와 함께 묘역과 꽃골에 대한 기록과 기억이 지켜져야 하는 거대한 문화유산임을 강조했다.

 

■ ‘개발 속에서도 역사는 숨 쉬어야’ 보존 대책 촉구

참석한 400여 명의 시민은 지역의 소중한 역사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감동과 함께 곧 사라지게 될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번 행사를 적극 지원한 남명우 의령남씨 찬성공파 회장은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선조들의 영면처를 이전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서, 문중 유적의 학술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입증하고 미래지향적인 계승 방안을 함께 모색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화답하면서 “향후 유산 이전에 따른 행정 절차 및 보존 계획 수립 과정에서도 유관 기관과 문중 간의 지혜로운 협력이 지속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번 행사가 성공적인 공론의 장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은 의령남씨 강무공파 남장희 회장은 “화곡 묘역의 역사 인물과 유적이 잘 보존·계승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삼성반도체 산단 개발이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용인시는 이번 학술대회를 기점으로 정식 발굴조사에 준하는 학술조사를 실시하고 조사 결과를 일반적인 매장문화유산 발굴조사보고서 수준으로 발간하여 기록보존하는 것과 함께, ‘용인분묘유적공원’ 조성으로 유산의 가치를 보존할 실질적인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