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
손석호
건강한 102세 어미가 야윈 팔십 대 딸의 손에 이끌려 요양원에 맡겨졌다
어둠을 몰고 와 창가에 앉는 불나방
아파도 약을 주지 말라는 딸의 말을 엿듣고 파닥인다
낮 동안 조용하던 어미
난다
경북 영주 출생
1994년 공단문학상, 2016년 [주변인과 문학] 등단. 시집 [나는 불타고 있다] [스파이더맨], 2025년 제1회 무등문학상 작품상 수상.
나방
손석호
건강한 102세 어미가 야윈 팔십 대 딸의 손에 이끌려 요양원에 맡겨졌다
어둠을 몰고 와 창가에 앉는 불나방
아파도 약을 주지 말라는 딸의 말을 엿듣고 파닥인다
낮 동안 조용하던 어미
난다
경북 영주 출생
1994년 공단문학상, 2016년 [주변인과 문학] 등단. 시집 [나는 불타고 있다] [스파이더맨], 2025년 제1회 무등문학상 작품상 수상.
공단으로 오는 봄 박춘희 반월공단(半月工團) 반이 빈 공단(空團)으로 남았다 비어서 더 투명한 낮달처럼 정적만이 초지동, 원곡동을 지나 39번 국도로 빠져나간다.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 몇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지나간다. 그들의 깊고 검은 눈동자가 구름으로 흩어진다. 염색 단지를 지나 시화호에 이르면 상한 물고기 떼 단단히 닫힌 수문을 물어뜯는다. 누구도 말을 걸지 않는 교각을 따라 해가 지고 바람이 먼바다를 데리고 오는 곳 아무도 바다만큼 올 수 없다. 저 혼자 짠물에 눈동자를 씻어 말리는 바다 갯발에 실려, 봄소식을 듣는 염생식물들 아무도 울지 않는다. 칠명초, 나문재, 퉁퉁마디 …… 터진 손등 발갛다. 『가물치 우는 밤』(파란) 중에서 약력: 경상북도 봉화 출생.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박사학위) 졸업. 2001년 [시와 시학] 시인 등단. 시집: <천 마리의 양들이 구름으로 몰려온다면> <[가물치 우는 밤>이 있다.
능소화 김주대 골목에 귀를 걸어 놓았다 귓바퀴에 당신 발소리 얹힐 때 그 무게로만 떨어지려고 시집: 『모든 흔들리는 눈망울 위에』 중에서 약력: 1991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도화동 사십계단』『그리움의 넓이』『사랑을 기억하는 방식』등을 냈다.
품 정현우 삼 년 전, 내 개는 죽었다. 지금쯤 엄마의 품에 내 작은 개가 안겨 있을 것이다. 죽음은 품을 닫아두었다. 나는 꿈을 열었다. 엄마의 품에 강아지를 맡기고 다시 돌아왔다. 시집 『검은 기적』 중에서 약력: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2015년 『조선일보』로 등단했다.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소멸하는 밤』 『검은 기적』이 있고, , <동주문학상><한용운문학상>을 수상했다.
공중누각 이향란 내가 당신에게 잊혀 지지 않는 사람이 될 즈음 내가 당신에게 버릴 수 없는 사람이 될 즈음 나는 지상에서 없는 사람이 되었고 당신이 내게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될 즈음 당신이 내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될 즈음 당신은 지상에서 흔적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지상에서 없어지고 당신이 흔적 없게 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번개가 되고 구름이 되었다 당신과 나의 말과 행동은 비록 천상에 가닿지 못해도 번쩍이거나 울컥거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상에서 우리를 끝까지 감싸주던 것은 나무나 못이 되어 보이지 않으나 보이는 집을 완성했다 가끔 큰 날개를 가진 새가 꿈결처럼 스쳐 지나가는 곳에서 우리는 매일매일 태어나는 노래에 실려 다녔다 잊히거나 버려져도 아무 두려움이 없었다 지상도 천상도 아닌 뭐라 말할 수 없는 지점에서 우리는 투명한 영원을 짧게 살았다 <약력> 2002년 첫 시집 출간으로 작품 활동 시작. <뮤즈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등 네 권의 시집과 동시집 <지렁이에게 옷을 입혀줘>가 있음.
진통제 최서진 소리가 들리지 않는 다큐멘터리를 본다 귀를 막아도 들리는 소리가 있어 빗방울 하나 주워 들고 파도 소리를 듣는다 날개를 갖지 못한 새는 모두 꽃이 될까 수국이 지면 장마가 오는 이유 모란이 가고도 다시 모란이 오는 이유 어둠을 모아 흰나비로 날려 보내야 하는 이유 꽃자리마다 숨겨 둔 슬픔이 있어 열꽃이라는 말에는 뜨거움과 서늘함이 함께해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쓰고 지워지고 싶은 날 스스로 제온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 바다거북이처럼 폭염이 유난했던 하루가 서쪽 하늘에 펼쳐진다 꽃을 실은 바람이 불어 구름이 잠깐 흔들리고 오늘부터 빨강 구름을 믿으려고 해 해열진통제를 먹고 이마를 가만히 짚어 본다 해열 진통제를 보면 이마를 짚어 주던 한 사람이 떠오르고 오늘의 장보기 리스트, 따뜻한 아이스크림 『지구의 모든 저녁이 모여 있는 곳』 (파란 , 2026년)중에서. 2004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아몬드 나무는 아몬드가 되고]외 3권. 김광협문학상, 발견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