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보
오래인 관습-그것은 전통을 말함이다ㅣ오장환

  • 등록 2021.08.30 09:21:23
크게보기

성씨보

오래인 관습-그것은 전통을 말함이다

                                                   오장환

 

내 성은 오씨. 어째서 오가인지 나는 모른다. 가급적으로 알리어 주는 것은 해주로 이사온 일청인이 조상이라는 가계보의 검은 먹글씨. 옛날은 대국숭배를 유심히는 하고 싶어서, 우리 할아버니는 진실 이가였는지 상놈이었는지 알 수도 없다. 똑똑한 사람들은 항상 가계보를 창작하였고 매매하였다. 나는 역사를, 내 성을 믿지 않어도 좋다. 해변가으로 밀려온 소라 속처럼 나도 껍데기가 무척은 무거웁고나. 수퉁하고나. 이기적인, 너무나 이기적인 애욕을 잊을랴면은 나는 성씨보가 필요치 않다. 성씨보와 같은 관습이 필요치 않다.

 

오장환(1918-1951)은 충북 보은군 회인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경기도 안성으로 이주하여 안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휘문고보를 중퇴한 후 일본에 잠시 유학하기도 했다. 1933년 『조선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하며 문단 생활을 시작했다. 정지용 시인의 제자이며 백석과 더불어 193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1948년 2월경 월북하였으나 남로당계로 분류되어 숙청되었다.

「성씨보」는 자신의 족보에 대한 시다. 그는 오씨지만 중국에서 해주로 이주해온 청인이 조상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어서 할아버지가 정말은 이씨였는지, 상놈이어서 아예 성씨가 없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똑똑한 사람들은 가계보를 창작하기도 하고 사고팔기도 하는 세태였다. 그리하여 화자는 역사를 혹은 자신의 성을 믿지 않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가계보를 지고 살아가는 자신이 바닷가로 밀려온 소라 껍데기처럼 무겁고 수퉁수럽다고 느낀다. 이기적인 욕망을 잊으려면 성씨가 필요치 않을 뿐 아니라 성씨보와 같은 관습이 필요치 않다고 노래한다. 여기서 가계보는 족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봉건적인 모든 것들, 인간을 속박하고 억압하는 모든 전통적인 가치관을 의미한다.  '창작과비평사'> 간 『오장환 전집1』중에서. 김윤배/시인

김윤배 기자 poet0120@gmail.com
Copyright @2009 용인신문사 Corp.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용인신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지삼로 590번길(CMC빌딩 307호)
사업자등록번호 : 135-81-21348 | 등록일자 : 1992년 12월 3일
발행인/편집인 : 김종경 | 대표전화 : 031-336-3133 | 팩스 : 031-336-3132
등록번호:경기,아51360 | 등록연월일:2016년 2월 12일 | 제호:용인신문
청소년보호책임자:박기현 | ISSN : 2636-0152
Copyright ⓒ 2009 용인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mail to yongin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