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을 주는 시-147|패(牌)|이돈형

  • 등록 2013.10.28 11: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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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 -147


패(牌)


이돈형


패에서는 뼈를 오랫동안 우려낸 맛이 난다

패와 패 사이
나를 미끼로 허공에 띄워 뜬구름을 잡아챌 때
훅, 훅, 훅킹의 감촉
패를 든 손에서
다리를 흔드는 버릇이 생겨나고
뼛속 깊이 스며들었던 고집스런 피 맛이 날 때

손 안에는
神이 포기한 외통수가 있고
내가 포기한 당신들이 있고
당신들이 포기한 뒤집힐 판이 있어
패를 까기 전에는 함부로 비웃지 마라

통뼈가 아닌 나는
자주 패를 쥐고도 웃음이 나는
늘 엿이었으며 좆이었으며 가끔은 쥐꼬리였음을
뒤집힌 패에서 다시 피 맛을 보지만

나는 한 순간도 패를 배신한 적 없고
패는 한 순간도 나를 놓아준 적 없는
패는
멀쩡해서
너무나 멀쩡해서
오늘도 패 하나를 까뒤집어 본다
혹시나 엿이거나 좆이거나 쥐꼬리였을
당신을 위하여

상처와 사랑은 얼마나 가까운가. 사랑에 관하여, 우리가 숨기고 있는 마지막 패는 무엇인가. 혹시, 당신은 사랑이 아닌 증오를 손아귀 속에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매순간 ‘쇼부(勝負.しょうぶ)’를 쳐야 하는 게 우리네 생이라면, 결국 마지막에 웃는 자는 죽음밖에 없을 것인데, 우리는 왜 그토록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못해 안달을 하며 살아가는가. 속이거나 속아주는 것이 사랑의 기술은 아닐 텐데 말이다. 당신의 히든카드는 죽음이 아닌 사랑이어야 한다.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
박후기 기자 hoogiwoog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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