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테이블의 외길인생

  • 등록 1999.08.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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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계의 산증인 윤세용옹(63)

"평생을 외길을 걸으며 후회없이 살았어. 비록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세계 최정상의 자리도 밟아보고. 미지의 산 정상에 오른 알피니스트가 맛보는 것과 같은 감격도 맛봤어" 전 탁구국가대표팀 코치이자 한국 탁구계의 산증인인 윤세용옹(62). 정현숙, 박미라, 김순옥, 이에리사…. 구기종목사상 처음으로 세계대회 우승의 감격을 안겨줬던 73년 유고 사라예보 제 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우승의 주역들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이들 한국 탁구계의 기라성같은 별들을 길러낸 이가 바로 그다.
이들 가운데 서울여상을 졸업한 이에리사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네명은 중학교 때 처음으로 라켓을 쥐어주며 국가대표 시절까지 10여년을 함께했다. 지금도 정현숙선수를 비롯한 동덕여중·고 출신의 제자들은 그를 가장 존경하고 그리워하는 스승으로 여긴다. 출가한 딸이 친정을 방문하듯 수시로 옛정을 그리워하며 윤옹을 찾아온다. 지금은 친딸처럼 스스럼없지만 당시에는 악명높은 지옥훈련으로 원망도 많이 들었단다.
윤옹이 탁구와 인연이된 것은 외아들로 평소 몸이 좋지못했던 것이 계기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학교에서 칠판을 엎어놓고 공을 치던 것에 재미를 붙여 시작한게 선수생활로 이어졌다. 경기상고 재학시절인 50년대에는 각종 대회를 휩쓸며 우승을 독차지한 유명선수였다. 화려한 선수생활을 뒤로한 채 61년부터 코치생활을 시작했다. 운동에 대한 아쉬움과 열정이 별다른 수입조차 보장해주지 못하는 지도자생활로 접어들게 한 것이다. 당시의 코치란 보수도 거의 받지 못하고 순수 열정만으로 버텨야하는 힘겨운 자리였다.
63년부터 동덕여중·고교 탁구부를 맡아 70년까지 10년 가까이 선수들을 지도했다. 한 학교에서 1∼2년 정도 지도자로 생활하던 것이 고작인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고 여기서 윤옹은 생애 최고의 감격을 안겨준 제자들과 첫 상봉하게 된다. 바로 정현숙, 박미라, 박순옥, 박인숙선수…. 정현숙선수는 반대하는 부모를 한달씩 쫓아다니며 설득한 끝에 간신히 선수생활로 이끌었고 이때의 설득이 없었다면 사라예보의 정현숙은 없었을 것이라는 게 윤옹의 기억이다. 이곳에서 지도력을 인정받은 윤옹은 당시에 단 2개밖에 없던 실업팀으로 자리를 옮겨 70년부터 산업은행 코치를 맡게됐다. 정현숙선수 등 제자들이 국가대표에 발탁되면서 국가대표팀 코치도 맡았다.
국가대표 코치시절 윤옹은 생애 최고의 감격을 맛보게 된다. 전국민이 열광했던 73년 사라예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감격의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이후 실업팀 감독을 몇 년 더한 윤옹은 78년 당시 중동지역 건설 붐과 함께 한국의 선진 탁구를 해외에 전파하는 개척자로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난다. 이곳에서 1년여동안 국가대표선수들을 지도하며 79년 방콕아시안게임 등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윤옹이 용인에 정착한 것은 귀국 직후인 80년. 지도자생활을 마감한 윤옹은 당시 기흥에 있던 동아건설 탁구전용체육관에 식료품을 납품하기로 하고 용인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이도 잠시. 체육관이 없어지면서 일마저 잃어버리고 실의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때 힘이 돼 준 이가 용인정보산업고교 심영구이사장이다.
경기상고 선후배이자 사제지간으로 각별한 사이였던 심이사장이 자신의 학교에서 매점이나 운영하라며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다. 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부터 지난해 겨울까지 만 10년을 이 학교에서 보냈다. 평생을 운동과 더불어 살아온 윤옹이지만 한때 생명이 경각에 달려 사선을 넘을 뻔한 적이 있다. 지난 92년 심장에 이상이 생겨 사경을 헤맸던 것. 그러나 윤옹의 투병생활을 전해들은 탁구인들이 탁구대회장에서 관계자와 관중을 상대로 즉석 모금운동을 벌여 수백만원을 모으고 용인정보산업고에서도 모금운동을 벌이는 등 각계에서 전해진 수술비로 생명을 건졌다. 경기장에서 모금운동을 벌인 예는 한국 스포츠사에서도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윤옹에 대한 탁구계의 애정이 각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회갑을 맞은 지난 97년에는 전국각지에서 탁구인과 제자들이 찾아와 생일을 축하해줬다. 사제의 정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그 깊이를 더하고 있다. 수시로 찾아오는 제자들을 만나는 즐거움에 윤옹의 노년은 외롭지 않다. 요즘은 구성면 상갈리 대우아파트 집에서 분재와 바둑에 몰두하며 소일하는 것이 낙이란다. 20년 경력의 분재와 40년 이상을 벗해온 바둑. 분재는 거의 전문가 수준이며 바둑은 아마추어로서는 최고수인 1급 수준. 탁구계에서는 더 이상 적수가 없어 탁구인들이 결성한 바둑모임인‘기우회’에서 주최하는 대회에는 참가조차 하지 못한다. 단지 고문이란 자리만 차지한 채 후배들의 경기를 관전할 뿐.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생각해. 열심히 살았으면 그 뿐이지 보상을 바란적은 한 번도 없어. 단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남편의 뒤에서 생활고에 시달린 아내에게 미안할 뿐이지. 가장 가슴아픈 부분이 바로 가족을 돌보지 못하고 아내에게는 마음고생만 시킨거야" 평생 운동을 사랑하며 외길인생을 살아온 윤옹. 이제는 가정으로 돌아와 그동안 아내와 자식들에게 못다한 사랑을 전하며 새로운 삶을 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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