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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90년대의 한국축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선 전반 5분도 안되어 쉽게 골을 먹고 시작한다. 그리고 만회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패스는 끊기기 일수이고 힘들게 얻은 슈팅은 하늘로만 뻥뻥 날라간다. 별로 아깝지도 않은 것 같은데 공격수는 머리를 쥐어뜯고, 얼굴을 감싼다. 그리고 어렵게 동점골을 우격다짐으로 넣는가 싶으면 후반 종료 5분쯤 남기고 허무하게 골을 먹는다. 이러면 다음날 언론들은 감독사퇴를 말하고 선수들을 맹비난하는 기사를 싣는다. 지난 사우디전을 보고 이런 그 옛날 한국 축구가 생각나는건 왜 일까?
■ 축구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찬반양론으로 흐르던 본프레레 감독에 대한 네티즌들의 여론이 이번 동아시아대회와 월드컵예선 마지막경기 사우디전 경기 패배이후 반대하는 여론쪽으로 급속히 기울어 가고 있다.
축구팬
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축구관련 사이트들은 사우디전 이후 18일 오전까지 사실상 마비됐고, 본프레레 감독의 팬페이지(www.jobonfrere.com, www.bonfrere.co.kr)와 정몽준 회장의 국회의원 홈페이지(www.mjchung.com)도 화난 네티즌들의 공격을 받았다. 본프레레 감독은 사면초가에 몰리는 형국이다.
네티즌들의 비판은 본프레레 감독에서 그치지 않고 대표선수, 축구협회로 확산되고 있다. 눈에 띄게 살이 찐 골키퍼 이운재선수도 화살을 맞고 있고 대부분의 태극전사들도 싸잡아 도마에 올라 왔다.
게다가 이런 온라인의 비난이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관중들의 집단야유와 갖가지 불만 가득한 현수막 등 오프라인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런 불만의 불똥은 생뚱맞게도 사우디전 경기를 중계했던 SBS와 송재익캐스터, 신문선해설위원에게도 튀었다. SBS 홈페이지 게시판 ‘SBS에 바란다’라는 코너엔 이들을 비난하는 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네티즌들은 “대표팀의 경기 내용보다 더 화가 난 건 송재익과 신문선의 중계 내용”이라면서 “왜 그리 말이 많은지. 쓸데없는 소리만 하다가 선수 퇴장 당한 것도 모르고 그냥 중계하다니 정말 한심하다”는 내용의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 읗셉?90% 본프레레 경질해야
축구협회는 23일 기술위원회를 열어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경기 내용 분석과 함께 그동안 ‘감독은 경질하지 않겠다’던 방침을 바꿔, 본프레레 감독의 경질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축구협회는 지난 17일 밤 사우디전 패배 이후 분노한 축구팬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축구협회 홈페이지는 접속이 폭주해 한때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사커월드’가 본프레레 감독의 거취를 놓고 실시한 설문에서 네티즌들의 91%가 본프레레 감독의 경질에 한표를 던졌다.
축구문제는 정치권에서도 비아냥의 소재로 전락됐다. 한나라당 맹형규 정책위의장은 지난18일 당 상임운영위에서 “어제 사우디아라비아전을 보고 인내가 한계에 도달했다. 본프레레 감독은 작전도 없이, 선수들만 동네축구를 하며 고생하고 있다”며 “월드컵 4강 당시 있었던 우리 선수들의 체력이나 조직력·패스워크 등은 다 어디로 가버리고, 우왕좌왕 헤매는 선수들을 보니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외신들도 경질에 대한 한국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본프레레가 내년 월드컵까지 감독직을 맡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보도했으며, dpa 통신도 “사우디아라비아전 패배로 본프레레 감독이 더욱 거센 퇴진 압력에 시달리게 됐다”는 기사를 타전했다.
■ 한국축구, 어디로 가야하나
한국축구에서 히딩크식 압박이 사라진 지 오래다.
만약 본프레레감독을 경질할 경우 현실적으로 대안 마련이 쉽지가 않다. 이미 유럽 프로리그 시즌이 시작돼 능력있는 감독은 대부분 팀을 맡고 있는 상황이다. 또 지난해 코엘류 감독을 경질하고 본프레레 감독을 선임할 때까지 2개월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새로운 감독으로 월드컵 본선을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대안으로 한국감독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10개월이 남았다지만 해외파가 모두 모여 훈련할 수 있는 기간은 고작 26일 정도밖에 안된다. FIFA규정에 따르면 월드컵 직전 14일과 A매치를 앞두고 소집할 수 있는 기간은 12일에 불과하다. 따라서 누가 오더라도 훈련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으며, 선택의 폭 또한 좁아진다. 그렇다고 본프레레의 ‘전술이 사라진(?)’ 축구로 그냥 가기도 꺼림직하니 한국축구는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설기현 선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유럽 선수들이 힘이 너무 좋아(설기현도 힘이 좋은편임) 부딪히면 나가 떨어져서 도저히 힘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제는 부딪히기 전에 공을 패스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힘도 덜 들고 더 빨리 공격할 수 있고, 공간 침투가 가능하다고 한다.”
바로 이렇게 ‘생각하는 축구’가 절실한 상황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