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입니다” 기자까지 속였다…대출받아 보냈더니 보이스피싱이었다

  • 등록 2026.09.10 12: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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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소속 언론사·직업까지 알고 접근…“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 압박
피해자가 직접 대출받았다면 원칙적으로 채무 남을 가능성 커
범인이 몰래 실행했다면 채무부존재 다툴 여지…본인인증 과정

 

용인신문 |

“O기자님, 안녕하세요. 검찰입니다. 기자님 명의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한 언론사 기자였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기자라는 직업도 알고 있었다. 어느 언론사에서 근무하는지도 알고 있는 듯한 말을 이어갔다. 평소 취재 과정에서 수사기관 전화를 받을 일이 전혀 없는 직업도 아니었다. 경계심이 조금씩 무너졌다.

상대는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기 때문에 자금 흐름을 확인해야 한다며 검찰과 금융당국의 조사 절차인 것처럼 설명했다. 이어 특정 금융거래를 해야 한다고 압박했고 결국 대출까지 받게 만들었다. 기자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금융회사에 접속해 실제 대출을 실행했고, 상대가 알려준 계좌로 돈을 보냈다.

모든 것이 끝난 뒤에야 알았다. 검찰도 아니었고 수사도 아니었다. 전형적인 보이스피싱이었다.

피해자는 돈만 잃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실행된 대출까지 남았다. 여기서 더 기막힌 문제가 시작된다.

“보이스피싱범이 가져간 돈인데, 이 대출을 내가 갚아야 하나.”

 

이름·직업·직장까지 어떻게 알았을까

이 사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사기범이 단순히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피해자의 이름과 직업을 알고 있었고 언론사 기자라는 사실까지 파악한 상태에서 접근했다.

그렇다면 이런 개인정보는 어떻게 범인 손에 들어갔을까.

정확한 유출 경로는 수사를 통해 확인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러 가능성이 있다. 기자의 경우 인터넷에 이름과 소속이 공개되는 일이 많다. 기사 하단 기자명, 언론사 홈페이지 기자 소개, 포털 뉴스 검색, 과거 취재 기사와 SNS 등을 조합하면 특정 기자의 이름과 소속, 담당 분야 정도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 과거 개인정보 유출이나 불법적으로 거래되는 개인정보가 결합될 경우 전화번호나 이메일 같은 추가 정보까지 붙을 수 있다. 범죄자는 이렇게 모은 정보를 이용해 피해자에게 “상대가 나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보이스피싱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이다. 처음부터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라 이름과 직업, 직장 등 실제 정보를 먼저 제시해 신뢰를 만들어낸 뒤 수사·압수·계좌동결 같은 단어로 공포심을 자극한다.

특히 기자처럼 검찰이나 경찰과 업무상 접촉 가능성이 있는 직업이라면 “수사기관에서 내게 전화를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는 점까지 악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는 한마디

사기범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가 피해자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고 겁을 주는 수법이다. “대포통장으로 사용됐다”, “명의가 도용됐다”, “범죄수익이 들어왔다”는 식으로 설명한 뒤 피해자에게 자금 검증이 필요하다고 압박한다.

이어 “보유자금을 안전계좌로 옮겨야 한다”, “대출 가능 여부까지 확인해야 혐의가 풀린다”, “금융감독원 검증 계좌로 돈을 보내야 한다”는 등의 거짓말을 한다.

정상적인 수사기관은 전화로 개인에게 대출을 받아 특정 계좌로 송금하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피해자가 이미 자신의 이름과 직업까지 알고 있는 상대의 말을 믿기 시작한 뒤라면 냉정한 판단이 어려워질 수 있다.

 

내가 직접 대출받아 송금했다면

문제는 보이스피싱 피해가 확인된 이후다.

안타깝지만 피해자가 사기범의 말을 믿고 직접 은행 앱에 접속해 대출을 신청하고 본인인증까지 거쳐 돈을 받은 뒤 범인 계좌로 송금했다면, 보이스피싱 피해라는 이유만으로 대출채무가 자동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은행 입장에서는 고객이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대출을 신청했고 실제 돈도 지급했기 때문이다. 그 돈을 피해자가 이후 사기범에게 송금했다는 사정은 은행과 피해자 사이의 대출계약과 별개로 판단될 수 있다.

가령 피해자가 5000만원을 대출받아 자신의 계좌로 받은 뒤 사기범에게 송금했다면 범인이 5000만원을 가져갔더라도 은행에 대한 5000만원의 대출채무는 남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피해자는 돈을 빼앗긴 데 이어 그 돈을 수년간 갚아야 하는 이중 피해를 당할 수 있다.

 

범인이 몰래 대출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러나 모든 보이스피싱 대출이 같은 것은 아니다.

피해자는 대출을 신청한 적이 없는데 사기범이 개인정보를 도용하거나 악성 앱을 이용해 피해자 명의로 대출을 실행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신분증과 계좌정보를 탈취한 뒤 범인이 직접 대출을 신청했거나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원격으로 제어하면서 피해자가 모르는 사이에 인증 절차를 진행했다면 애초에 피해자의 대출 의사가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된다.

이 경우 피해자는 금융회사를 상대로 “나는 대출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없다”며 대출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채무부존재 확인 등을 검토할 수 있다.

 

악성앱·원격제어였다면 누가 버튼을 눌렀나

최근 보이스피싱은 전화 한 통으로 끝나지 않는다. 수사기관 앱이나 금융기관 앱처럼 꾸민 악성 프로그램을 설치하게 한 뒤 휴대전화를 원격으로 조종하는 방식까지 동원된다.

이런 사건에서는 단순히 피해자 휴대전화에서 대출이 실행됐다는 사실만으로 피해자가 직접 대출을 신청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

누가 대출 신청 화면을 조작했는지, 인증번호를 누가 입력했는지, 피해자가 대출 실행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휴대전화에 원격제어 프로그램이 설치됐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결국 보이스피싱 대출 사건에서는 “누가 돈을 가져갔느냐” 못지않게 “누가 대출계약을 체결했느냐”가 중요하다.

김종경 기자 iyongi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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