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유전자의 생존기계다’…50년간 100만명이 읽은 ‘이기적 유전자’, 대체 무슨 책이길래

  • 등록 2026.09.10 10:3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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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출간된 리처드 도킨스의 과학 고전, 올해 50주년
국내 누적 판매 100만부 돌파…30여개 언어로 번역
‘개체가 아닌 유전자 중심으로 진화를 보라’는 파격적 시각
50년 뒤 도킨스가 바라본 것은 ‘AI의 진화’

 

용인신문 |

1976년 한 젊은 진화생물학자가 도발적인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그로부터 꼭 50년이 지난 올해 이 책의 50주년 기념판이 나왔다. 30여개 언어로 번역됐고, 우리나라에서는 1993년 처음 번역 출간된 뒤 판매량 집계가 시작된 2000년 이후에만 100만부 넘게 팔렸다. 과학책 한 권이 반세기 동안 살아남아 세대를 바꿔가며 읽히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기적 유전자』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책일까.

책의 핵심은 의외로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진화의 주인공을 인간이나 동물이 아니라 유전자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인간은 주인공이 아니라 ‘생존기계?’

우리는 흔히 진화를 개체의 관점에서 생각한다. 사슴은 살아남기 위해 빨리 달리고, 새는 번식하기 위해 화려한 깃털을 갖게 됐으며, 인간 역시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도킨스는 여기서 시선을 한 단계 더 아래로 내린다. 진화에서 오랜 시간 살아남는 것은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라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 늙고 죽는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부모의 유전자는 자녀에게 전달되고 다시 그 자녀에게 이어질 수 있다. 개체의 수명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유전정보가 복제되며 살아남는 것이다.

도킨스는 그래서 생명체를 유전자가 자신을 보존하고 복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생존기계(survival machine)’​라고 표현했다. 인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 표현은 당시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인간이 스스로 삶을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유전자를 운반하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모는 왜 자식을 위해 희생할까

여기서 곧바로 의문이 생긴다. 유전자가 그렇게 ‘이기적’이라면 자연에는 왜 희생과 협력이 존재할까.

어미 새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포식자에게 맞서고, 벌은 집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기도 한다. 인간 역시 가족과 타인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다.

『이기적 유전자』의 재미는 바로 이 역설을 설명하는 데 있다.

도킨스의 ‘이기적’이라는 표현은 사람이 욕심을 부린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을 더 잘 복제해 다음 세대로 남기는 유전자가 자연선택을 통해 살아남는다는 비유적 표현이다.

따라서 개체의 희생도 유전자 수준에서 보면 설명될 수 있다.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처럼 유전자를 많이 공유하는 혈연을 돕는 행동은 자신과 같은 유전자가 다음 세대에 남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당장 내가 손해를 보는 행동이라도 긴 진화의 시간으로 보면 특정 유전자의 생존에는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을 돕는 것도 진화할 수 있다

책은 혈연관계가 아닌 개체 사이의 협력도 다룬다.

오늘 내가 당신을 돕고, 다음에는 당신이 나를 돕는 관계가 반복된다면 서로 협력하는 전략이 장기적으로 유리해질 수 있다. 이른바 ‘상호적 이타주의’​다.

때문에 『이기적 유전자』는 ‘세상은 이기적인 자만 살아남는다’고 주장하는 책과는 오히려 거리가 멀다.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출발했는데도 자연 속에서 협력과 희생, 가족애와 사회적 행동이 어떻게 등장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려는 책이다.

 

‘밈’이라는 말도 이 책에서 태어났다

50년이 지난 지금 『이기적 유전자』를 다시 읽을 이유는 또 있다. 오늘날 인터넷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밈(meme)’이라는 단어를 널리 알린 책이 바로 『이기적 유전자』다.

도킨스는 유전자처럼 인간의 문화에도 복제되고 퍼져나가는 단위가 있다고 봤다. 노래와 유행, 생각, 종교, 관습처럼 사람의 머리에서 다른 사람의 머리로 전달되는 문화적 정보를 ‘밈’이라고 불렀다.

당시에는 하나의 진화론적 개념이었지만 인터넷과 SNS가 등장하면서 사진 한 장, 짧은 영상, 유행어 하나가 순식간에 복제되고 변형돼 전 세계로 퍼지는 현상을 설명하는 단어로 다시 태어났다. 1976년 만들어진 개념이 반세기 뒤 디지털 문화의 핵심 용어가 된 셈이다.

 

50년 뒤 도킨스가 바라본 것은 ‘AI의 진화’

이번 50주년 기념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 가운데 하나는 인공지능(AI)이다.

도킨스는 에필로그에서 AI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영감을 받아 쓴 시를 소개하고, 기계가 단순한 계산 도구를 넘어 진화 과정에 새로운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언급한다.

생물학적 유전자가 자신을 복제하며 생명의 진화를 만들어왔다면 인간이 만든 정보와 기술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복제되고 변화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이다.

50년 전 도킨스가 던진 질문은 결국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이기적 유전자』가 내놓은 답은 불편하면서도 강렬했다. 인간을 진화의 최종 목적지로 보지 말라는 것이다. 수십억 년 동안 이어져온 생명의 역사에서 우리 역시 유전정보가 다음 세대로 건너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하나의 존재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책이 인간의 운명이 유전자에 의해 완전히 결정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킨스는 인간이 자신의 생물학적 성향을 이해하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존재라는 가능성도 남겨놓는다.

그래서 『이기적 유전자』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읽힌다. 유전자에서 시작한 책이지만 결국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인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왜 사랑하고 경쟁하며 협력하는가. 그리고 인간은 자신을 만들어낸 진화의 법칙을 어디까지 넘어설 수 있는가.

100만명의 한국 독자가 읽은 『이기적 유전자』가 반세기가 지나 다시 독자 앞에 놓였다. 이번에는 유전자뿐 아니라 AI라는 새로운 ‘복제자’의 가능성까지 바라보면서다.

김종경 기자 iyongi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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