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우리 엄마는 O형인데 나는 AB형이에요.”
최근 KBS 드라마 ‘사랑이 온다’에서 이 한마디가 뜻밖의 혈액형 미스터리를 만들었다. 학교에서 혈액형 유전을 배운 아이가 자신의 혈액형은 AB형인데 엄마는 O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자신이 친아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충격에 빠지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정말 O형 엄마에게서는 AB형 아이가 태어날 수 없는 걸까.
교과서대로라면 답은 ‘그렇다’. 일반적인 ABO 혈액형 유전에서 A형은 AA 또는 AO, B형은 BB 또는 BO, AB형은 AB, O형은 OO 유전자형을 갖는다. O형인 어머니는 아이에게 O 유전자만 물려줄 수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A형이면 아이는 A형이나 O형, B형이면 B형이나 O형이 될 수 있고, 아버지가 AB형이어도 A형이나 B형이 될 수 있을 뿐 일반적인 AB형은 나오지 않는다.
■교과서 밖에 있는 ‘희귀 혈액형’
하지만 실제 의학의 세계는 조금 더 복잡하다. 대표적인 예외가 ‘cis-AB형’이다. 일반적인 AB형은 부모에게서 A와 B 유전자를 하나씩 물려받지만 cis-AB는 하나의 ABO 대립유전자가 A와 B 항원의 성질을 함께 나타내는 희귀 혈액형이다. 이 때문에 가족의 혈액형 조합만 놓고 보면 기존 유전법칙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특히 cis-AB형은 세계적으로 드문 혈액형이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상대적으로 자주 보고된다. 국내 연구에서도 약 17만 명 가운데 60명가량에서 cis-AB형이 확인된 사례가 있어 아주 희귀하기는 해도 현실에 존재하는 혈액형이다.
더 복잡한 경우도 있다. ‘봄베이형’이나 ‘para-Bombay형’처럼 일반 혈액형 검사에서는 O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A나 B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경우다. ABO 혈액형의 A·B 항원이 적혈구에 나타나기 위해서는 바탕이 되는 H항원이 필요한데, 이 H항원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유전자를 갖고 있어도 겉으로는 O형처럼 검사될 수 있다.
실제로 의학계에서는 O형으로 알고 있던 어머니에게서 AB형 아이가 태어나 정밀검사를 한 결과 어머니가 일반적인 O형이 아니라 희귀한 para-Bombay형으로 확인된 사례도 보고돼 있다. 드라마 속 설정처럼 보이는 일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도 아주 드물게는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어머니가 정말 일반적인 OO 유전자형의 O형이고 아이 역시 일반적인 AB형이라면 그 조합은 성립하기 어렵다. 이런 경우에는 먼저 과거 혈액형을 잘못 기억했거나 검사 과정에 오류가 없었는지 다시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병원 진단검사의학과에서 정밀 혈액형 검사나 ABO 유전자 검사를 받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혈액형을 친자확인 검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과거에는 부모와 자녀의 혈액형 조합을 이용해 친자관계 가능성을 일부 추정하기도 했지만, 혈액형만으로 친자 여부를 확정할 수는 없다. 정확한 확인에는 DNA 검사가 필요하다.
‘O형 엄마에게 AB형 아이가 태어났다.’ 교과서 문제라면 답은 간단하다. 그러나 실제 사람의 혈액형 유전에는 cis-AB와 봄베이형처럼 교과서의 네 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예외가 있다. 혈액형이 맞지 않는다고 곧바로 가족관계를 의심하기보다 먼저 그 혈액형이 정말 평범한 O형과 AB형인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 출처: KBS 드라마 ‘사랑이 온다’ 방송 내용, ABO 혈액형·cis-AB·Bombay/para-Bombay 관련 의학논문 및 국내 혈액형 연구자료 종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