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말이 통하지 않아도 춤은 통한다. 살아온 역사와 문화가 달라도 무대 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몸짓에는 통역이 필요 없다. 한국과 러시아의 예술가들이 서울에서 만나 서로 다른 문화와 정서를 ‘예술’이라는 하나의 언어로 풀어낸다.
‘2026 한·러 문화예술제전’이 오는 17일과 18일 오후 7시30분 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다. 이번 무대가 특별한 것은 단순한 해외 예술단 초청공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과 러시아 예술가들이 같은 무대에서 각자의 전통과 현대적 예술세계를 펼쳐 보이며, 국가와 언어를 넘어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공감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화교류의 장이다.
# 올해 제전의 주제는 ‘파토스(Pathos): 열정과 공감’.`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 비롯된 ‘파토스’는 사람의 감정을 움직여 공감에 이르게 하는 열정과 정서를 의미한다. 행사를 관통하는 메시지 역시 여기에 있다. 서로 다른 두 나라가 예술을 통해 상대의 감정을 느끼고 이해해보자는 것이다.
첫날인 17일에는 전혀 다른 색깔의 장르들이 한 무대에서 만난다. 러시아의 ‘모스크바 국립 아카데미 무용극장 끄젤(Moscow State Academic Dance Theater Gzhel)’이 러시아 특유의 강렬하고 화려한 무용극을 선보인다.
한국에서는 이대현 연출의 연극 ‘갈매기 비밀 리허설’과 최경란·윤혜성의 창작한국무용 ‘연(緣)이 되어 연(燃)하다’가 무대에 오른다.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하나의 무대 안에서 ‘열정과 공감’이라는 같은 질문을 던진다. 특히 러시아 무용극장의 무대는 국내 관객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러시아 공연예술의 색채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끈다.
# 러시아 전통춤과 한국의 ‘궁’…둘째 날은 전통의 대화
18일에는 두 나라의 전통문화가 정면으로 만난다. 러시아 무용단은 러시아 각 지역과 민족의 색채를 담은 전통무용 8개 작품을 선보인다. 화려한 의상과 힘 있는 군무, 빠른 리듬을 특징으로 하는 러시아 전통춤의 다양한 면모가 펼쳐질 예정이다.
이에 맞서는 한국의 무대는 전통무용 ‘궁’이다. 박미영 대한문화예술진흥협회 이사장이 직접 연출과 안무를 맡아 출연하는 작품으로,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온달이 궁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시작해 ‘신전’, ‘여령’, ‘애민’으로 이어지는 4막을 통해 여러 한국 전통춤을 하나의 이야기 속에 녹여냈다. 러시아의 역동적인 민속춤과 한국 전통춤 특유의 절제된 선과 호흡이 같은 무대에 오르는 셈이다.
누가 더 화려한가를 겨루는 공연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두 나라가 어떤 몸짓으로 기쁨과 슬픔, 사랑과 공동체를 표현해왔는지를 비교해 보는 ‘전통의 대화’에 가깝다.
# “쉽지 않은 과정…그래도 예술은 이어져야 한다”
이번 행사는 (사)대한문화예술진흥협회와 (사)한러대화(KRD), 러시아 연방 문화부가 주최하고 대한문화예술진흥협회와 러시아 문화부 산하 로스콘체르트가 주관한다. 대한문화예술진흥협회는 매년 하반기 ‘대한문화예술제전’을 열어왔으며, 올해는 러시아 예술단과 손잡고 국제 문화교류 무대로 범위를 넓혔다.
박미영 이사장은 이번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두 나라가 만나 하나의 공연을 만드는 과정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예술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마음과 국가적 공익,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해 왔다”고 말했다.
한러대화 우윤근 위원장을 비롯해 러시아 문화부 산하 로스콘체르트와 양국 문화·외교 관계자들도 이번 교류에 힘을 보탰다.
박 이사장은 “한국과 러시아의 예술이 열정적으로 소통하고 그것이 공감으로 이어지는 무대가 되기를 바란다”며 “관객들의 마음에도 ‘파토스’의 열정이 가득 차오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외교에는 이해관계가 따르고 정치에는 입장 차이가 생긴다. 그러나 한 사람이 춤을 추고, 다른 한 사람이 그 몸짓에 박수를 보내는 순간만큼은 국적도 언어도 잠시 뒤로 물러난다. 오는 17일과 18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펼쳐질 한·러 문화예술제전이 주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과 러시아가 예술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고, 듣고, 느끼는 이틀. 이번 무대는 두 나라의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공연을 넘어, 멀어진 거리를 사람과 사람의 공감으로 다시 좁혀보는 작은 문화외교의 현장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