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을 때가 아니라, 돈이 없을 때 떠나기로 했다”

  • 등록 2026.09.07 11: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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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 장진하의 좌충우돌’ 작가 장진하

 

통장 잔고 250만원으로 과감하게 ‘세계여행’ 대장정 출발
20대 여성 나홀로 여정, 현지인과 친구되면 ‘안전 보호막’
숙식제공 자원봉사 플랫폼 활용 경비 줄이고 특별한 경험
2년반의 시간 나를 찾아가는 기회… 다시 새로운 출발선
초등학생때 주입식 교육 부작용 눈떠 초·중·고 대안교육

 

용인신문 |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와 결혼, 안정적인 직장을 고민할 나이 스물아홉. 하지만 장진하 작가의 이력서는 조금 남다르다. 대학교 졸업 후 배낭 하나 메고 떠난 일본 여행을 시작으로, 지난 2년 반 동안 미국·멕시코·과테말라·페루·콜롬비아의 정글과 고산지대를 누비고 일본과 호주, 태국을 거쳐 돌아왔다. 용인신문에 〈모험가 장진하의 좌충우돌〉을 연재하며 현지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온 그녀. 화려한 관광지 대신 소박한 시골 마을의 문을 두드리고, 돈 대신 자원봉사와 재능을 나누며 사람의 온기를 느꼈다는 장진하 작가를 만나 그녀의 여정과 내면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Q 29세, 보통의 청년들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번 2년 반에 걸친 대장정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 “어릴 때부터 제 꿈은 늘 ‘세계 여행’이었어요. 20대 초반에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방학마다 틈틈이 나갔죠. 하지만 본격적인 장기 여행을 결심한 건, 주변 친구들이 취업하고 사회라는 거대한 틀 속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였어요. 한 번 회사에 들어가면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쓰기까지 수년이 훌쩍 지나가잖아요.

 

사람들은 보통 여행을 갈 때 ‘돈’이나 ‘시간’ 중 하나가 부족하다고 하죠. 저는 ‘시간이 없을 때가 아니라, 돈이 없을 때 떠나자’고 결심했어요. 비록 통장 잔고는 250만 원 남짓으로 턱없이 부족했지만, 지금 떠나지 않으면 영영 기회가 없을 것 같아 과감하게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Q 20대 여성이 홀로 떠난 남미와 장기 여행, 위험하거나 무섭지는 않았나요?

=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여자 혼자 안 무서웠냐’, ‘돈은 얼마나 들었냐’예요(웃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큰 사건 사고 없이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환전할 때 약간의 손해를 본 사기 정도 말고는 귀중품을 도난당하거나 위험한 일에 휘말리지 않았어요.

 

 비결은 ‘현지인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 것’이었어요.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은 범죄의 타깃이 되기 쉽지만, 저는 작은 시골 마을 위주로 다녔거든요. 현지 문화예술 워크숍이나 자원봉사 플랫폼을 통해 지역 사람들과 교류하며 친구가 되었고, 그 친구들의 가족과 동네 주민들이 저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보살펴주었습니다.”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인연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 “단연 콜롬비아의 작은 마을 ‘산도나(Sandoná)’와 그곳에서 만난 일곱 살 터울의 언니 ‘재클린’이에요. 그 언니를 만나러 먼 길을 이동해 찾아갔는데, 일주일 넘게 언니의 집에서 머물며 가족처럼 지냈어요. 장을 함께 보고, 일곱 살 난 재클린의 어린 아들과 놀다 보니 자연스레 스페인어도 늘었죠.

 

동네 사람들이 동양에서 온 저를 신기해하며 마을 온천에도 데려가고 자랑스레 소개해 주던 따뜻한 정은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페루에서 마부와 요리사가 동행했던 4박 5일간의 살칸타이 트레킹 역시, 당시엔 제게 큰 지출이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다시 못 올 순간’에 과감히 투자해 얻은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Q 1년에 약 1000~1200만 원(월 100만 원 꼴)으로 버틴 초절약 여행자였는데, 경제적 압박은 어떻게 극복했나요?

= “초반에는 돈을 아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정말 심했어요. ATM이 100만 원가량을 삼켜버렸을 땐 막막해서 눈앞이 캄캄했죠. 하지만 ‘돈만 아끼려다 진짜 해야 할 경험을 놓치면 여행의 본질이 퇴색된다’는 걸 깨달았어요.(atm 사건은 두달 후 해결되었습니다.)

 

 그래서 숙식이 제공되는 자원봉사(Workaway 등) 플랫폼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자원봉사는 경비를 획기적으로 줄여줄 뿐 아니라, 현지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고 안전하고 결이 맞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는 최고의 창구가 되어주었죠. 점심에 넉넉히 나오는 로컬 식당 음식을 포장해 저녁을 해결하거나 친구들과 함께 요리해 먹으며 방법을 찾아나갔습니다.”

 

Q 획일적인 정규 교육 대신 초·중·고(간디학교) 대안 교육을 거쳤다고 들었어요. 이러한 배경이 삶과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눈이 펑펑 내린다’는 정답만 강요하고 개성을 존중하지 않는 주입식 교육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부모님께서 제 성향을 알아채시고 대안학교를 권해주셨죠. 간디고등학교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하며 연극을 올리고, 지리산을 걷고, 내가 듣고 싶은 수업(영어, 의복 제작 등)을 주도적으로 선택해 몰입했던 경험들이 제 뼈대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남들이 말하는 ‘대기업 스펙’이나 사회적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의 상(像)’을 스스로 그려나가는 단단한 내면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Q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서, 장진하에게 예술과 자아실현은 어떤 의미인가요?

=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제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겪은 경험과 그때 배운 감정들을 내 손으로 단정하게 정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자아실현’과 ‘밥벌이’는 건강하게 분리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림과 글은 내 삶을 기록하고 치유하는 순수한 영역으로 두고, 생계를 위한 일은 제가 흥미를 느끼는 ‘공간 기획 및 인테리어·프로젝트 매니징’ 분야에서 풀어가려 고민 중입니다. 정해진 직업의 타이틀(화가, 작가 등)에 나를 가두기보다, 좋아하는 행위 자체를 지속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Q 2년 반의 여정을 끝마친 지금, ‘장진하에게 여행이란 무엇인가요?’

= “여행은 밖으로 떠나는 일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내 안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걸 모르면 아무리 멋진 곳을 가도 계속 허기를 느끼며 방황하게 돼요. 내 삶의 밸런스를 잡고, 일상의 작고 반짝이는 순간들을 발견하는 힘을 길러야 하죠. 또한 제게 여행은 하나의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이건 나와 맞지 않구나’를 하나씩 쳐내며 나만의 길을 뾰족하게 다듬어가는 ‘가지치기’의 여정이었습니다.”

 

Q 불안과 막막함 앞에 주저하는 한국의 또래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 “많은 청년들이 ‘돈이 없어서’, ‘외국이 무서워서’, ‘경력이 끊길까 봐’ 떠나기를 주저해요. 하지만 꼭 저처럼 2년 반씩 길게 나갈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단 일주일, 혹은 한 달이라도 좋아요.

 

내가 진짜 무엇을 경험하고 싶은지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자원봉사나 로컬 워크숍 같은 검증된 통로를 찾아보세요. 생각보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안전하고 풍성하게 세상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많습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스스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내가 미처 몰랐던 단단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에필로그] 다음 여행을 준비하며

장진하 작가는 이제 단순한 방랑을 넘어, 자신이 쌓은 역량과 기술로 타인과 사회에 기여하는 ‘하이브리드 여행’을 구상하고 있다. 유럽의 대안 공간과 문화 프로젝트를 탐방하고, 그곳에서 매니저로 협력하며 얻은 인사이트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그녀.

세상이 정해준 규격에 맞추지 않고, 스스로 길을 내며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녀의 다음 모험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글: 김종경 본지 발행인 / 현지 사진: 장진하 제공>

김종경 기자 iyongi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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