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공장 안은 여전히 어두운데 LED 조명을 바꾸기에는 돈이 아깝다. 환기시설은 낡았지만 생산라인을 멈추면서까지 손대기도 어렵다. 직원들이 사용하는 화장실과 휴게실도 고쳐야 하지만 당장 매출과 직결되지 않는 시설은 투자 순위에서 자꾸 뒤로 밀린다.
중소 제조기업들이 흔히 겪는 고민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설비 하나 더 들이는 것도 빠듯한데 도로와 배수시설, 작업장 환기시설, 기숙사와 화장실, 소방시설까지 모두 직접 챙겨야 한다.
용인시가 이런 기업들의 ‘미뤄둔 숙제’를 대신 풀어주기 위해 지원에 나선다.
시는 오는 9월 4일까지 지역 중소 제조업체와 지식산업센터를 대상으로 ‘기업환경 개선 사업’ 신청을 받는다. 단순한 공장 보수 지원을 넘어 공장으로 들어가는 도로부터 작업장 내부, 근로자 휴게시설, 화재 안전시설까지 기업 활동에 필요한 환경 전반을 손보는 사업이다.
특히 사업비의 최대 80%까지 지원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원 분야는 기반 시설, 노동환경, 지식산업센터, 작업환경, 소방시설 등 모두 5개다.
기업 여러 곳이 몰려 있는 지역에서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것은 기반 시설이다. 공장 앞 도로가 좁거나 파손돼 대형 화물차가 드나들기 어렵고, 비가 올 때마다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 곳이라면 개선 대상이 될 수 있다. 도로 확장·포장을 비롯해 상하수도, 소교량, 우수관 정비 등이 지원 대상이다.
다만 특정 기업 한 곳만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공동 기반시설을 개선하는 사업인 만큼 3개 업체 이상이 함께 신청해야 한다.
직원들이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공장 내부 환경도 지원한다.
최근 3년간 평균 매출액이 200억 원 이하인 중소 제조기업은 기숙사와 휴게실, 식당, 화장실을 새로 설치하거나 고치는 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근로환경 개선에 지원되는 금액은 최대 4000만 원이다.
그동안 생산설비 투자에 밀려 직원 편의시설 개선을 미뤄왔던 기업이라면 활용도가 높은 사업이다. 낡은 화장실을 고치거나 제대로 된 휴게공간을 만드는 것도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
‘아파트형 공장’으로 불리는 지식산업센터도 포함된다.
준공 후 7년 이상 된 지식산업센터는 주차장과 화장실 등 공동시설을 개보수하거나 오래된 기계실을 손보는 데 최대 600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여러 기업이 한 건물을 사용하는 지식산업센터 특성상 개별 업체가 해결하기 어려운 노후 시설을 공동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공장 생산현장을 직접 바꾸는 작업환경 개선사업도 있다.
최근 3년 평균 매출액이 100억 원 이하인 제조 소기업을 대상으로 작업공간 개보수와 작업대 설치, 환기·집진장치, LED 조명 설치 등에 최대 2000만 원을 지원한다.
특히 분진이나 유해물질이 발생하는 작업장의 환기·집진시설은 근로자의 건강뿐 아니라 생산성과도 직결된다. 오래된 조명을 LED로 바꾸는 것 역시 작업환경 개선과 에너지 절감 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다.
이번 사업에서 지원 규모가 가장 큰 분야는 소방시설이다.
중소 제조기업과 지식산업센터 모두 신청할 수 있으며 경보설비와 무선 화재감지기, 자동화재탐지설비 등 소방시설 설치·개보수 비용으로 최대 7000만 원을 지원한다.
공장 화재는 한 번 발생하면 생산설비와 원자재가 동시에 피해를 입어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대규모 소방설비 교체 비용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시가 소방시설을 별도 지원 분야로 둔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지원 희망 기업은 신청서와 관련 서류를 준비해 용인시 기업지원과를 방문하거나 우편으로 접수하면 된다.
신청했다고 곧바로 지원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시는 서류심사와 현장실사를 진행한 뒤 경기도 기업육성·지원대책협의회 심의를 거쳐 2027년 1월 최종 지원 대상을 선정할 예정이다.
용인시가 기업환경 개선에 돈을 투입하는 이유는 단순히 공장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생산설비와 연구개발, 인건비에 자금을 우선 투입하다 보면 근로환경이나 공동 기반시설 개선은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하지만 도로와 배수시설이 불편하고 작업장이 열악하면 물류비와 생산성이 떨어지고, 결국 직원 채용과 장기근속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즉 화장실 하나, 환기시설 하나를 고치는 일이 기업 경쟁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 용인시는 올해 이 사업을 통해 지역 중소 제조업체 31곳에 약 5억 원을 지원했다. 내년에도 기업 현장에서 필요성이 큰 시설을 중심으로 지원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도로 등 기반 시설과 함께 작업장, 화장실, 휴게실 등의 설치·개보수를 지원하는 만큼 많은 기업이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기업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기반 시설과 근로환경 개선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거창한 산업정책만이 기업 경쟁력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화물차가 편하게 공장에 들어올 수 있는 도로, 먼지가 빠져나가는 환기시설, 직원들이 잠시 쉴 수 있는 휴게실, 화재를 초기에 잡아낼 감지기처럼 기업 현장에서 매일 사용하는 시설들이 제대로 갖춰져야 공장도 제대로 돌아간다.
용인시가 이번에 꺼내든 기업지원 카드는 ‘공장을 더 짓는 지원’이 아니라 ‘지금 있는 공장이 더 잘 돌아가게 만드는 지원’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