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폭염이 길어지면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하루가 달라지고 있다. 한낮을 피해 새벽에 뛰거나, 해가 진 뒤 운동화를 신는 사람들이 늘었다.
하지만 여름철 야외 운동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몇 시에 뛰느냐’가 아니다. 운동하는 동안 몸속에 얼마나 많은 열이 쌓이고, 그 열을 얼마나 빨리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오후 8시라고 무조건 안전한 것도 아니다. 해는 졌지만 낮 동안 달궈진 아스팔트와 건물이 계속 열을 내뿜고 습도까지 높다면 몸은 좀처럼 식지 않는다. 반대로 아침이라도 햇볕이 강하고 습도가 높으면 평소보다 훨씬 빨리 체온이 올라갈 수 있다.
폭염 속 운동의 기준을 시계가 아니라 ‘체온 관리’로 바꿔야 하는 이유다.
여름철 운동이 힘든 것은 단순히 덥기 때문만은 아니다. 몸은 운동을 시작하면 근육에서 많은 열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외부의 높은 기온과 햇볕, 습도까지 겹치면 체온을 떨어뜨리는 일이 어려워진다.
특히 습도가 높으면 땀을 많이 흘려도 몸이 잘 식지 않는다. 땀은 피부에서 증발하면서 열을 빼앗아가는데 공기 중 수분이 많으면 증발이 더뎌지기 때문이다. 땀이 비 오듯 흐른다고 해서 몸이 충분히 식고 있다는 뜻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스포츠와 산업 현장에서는 단순 기온보다 기온·습도·복사열 등을 함께 고려하는 ‘습구흑구온도(WBGT)’를 활용한다.
일반인이 운동할 때도 비슷한 원칙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에 표시된 기온 하나만 볼 것이 아니라 체감온도와 습도, 햇볕의 강도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그렇다면 아침과 저녁 가운데 어느 시간이 낫다고 할 수 있을까.
폭염기에는 대체로 햇볕이 강한 낮 시간을 피하고 이른 아침이나 해가 진 뒤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 다만 두 시간대에는 각각 장단점이 있다.
이른 아침은 낮보다 기온이 낮아 몸이 받는 열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걷기나 가벼운 달리기처럼 오랫동안 지속하는 유산소 운동을 하기에 유리하다.
다만 잠에서 깨어난 직후에는 근육과 관절이 충분히 풀리지 않은 상태일 수 있기 때문에 곧바로 속도를 올리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평소보다 길게 몸을 풀고 천천히 강도를 높이는 편이 안전하다.
저녁에는 몸이 이미 하루 동안 움직인 상태라 근육과 관절이 비교적 부드럽다. 웨이트트레이닝이나 조금 강한 운동을 하기에는 편할 수 있다.
문제는 한여름의 ‘잔열’이다. 해가 졌는데도 도로나 건물 주변의 열기가 그대로 남아 있거나 습도가 높은 날은 저녁 운동도 만만치 않다.
늦은 시간 격렬한 운동은 수면을 방해할 수도 있어 잠들기 직전까지 강도 높은 운동을 이어가는 것은 피하는 편이 좋다.
무엇보다 폭염 때 버려야 할 생각은 “평소 하던 만큼은 해야 운동이 된다”는 고집?이다.
더운 환경에서는 같은 속도로 달리고 같은 무게를 들어도 몸이 받는 부담이 커진다. 몸은 체온을 낮추기 위해 피부 쪽으로 더 많은 혈액을 보내야 하고, 동시에 운동 중인 근육에도 혈액을 공급해야 한다. 그만큼 심장은 더 바쁘게 움직인다.
평소 10㎞를 뛰던 사람이 폭염에도 똑같은 거리와 속도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달리는 속도를 낮추거나 운동 시간을 줄이고, 걷기와 달리기를 섞는 식으로 바꾸는 것이 낫다.
더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평소 운동량을 채우려 하지 말고 며칠에 걸쳐 조금씩 운동시간과 강도를 높여야 한다.
미국 야생의학학회도 더운 환경에 적응하는 ‘열순응’이 중요하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일정 기간에 걸쳐 운동 시간과 강도를 서서히 늘리면 땀 배출과 체온 조절 능력이 개선되면서 더위에 대한 적응력이 높아질 수 있다.
수분 섭취 역시 ‘목마르면 마신다’는 방식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운동 중 갈증을 느낄 정도가 되면 이미 몸에서 상당량의 수분이 빠져나간 상태일 수 있기 때문이다.
폭염에는 운동 전에 미리 수분을 보충하고 운동하는 동안에도 한꺼번에 많은 양을 들이켜기보다 조금씩 나눠 마시는 것이 좋다.
오랫동안 운동해 땀을 많이 흘렸다면 물만 계속 마시기보다 식사나 간식 등을 통해 나트륨을 비롯한 전해질도 함께 보충할 필요가 있다.
소변 색깔도 간단한 참고가 된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소변이 평소보다 짙다면 수분이 부족한 상태일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이 보내는 위험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달리다 갑자기 어지럽거나 머리가 아프고, 메스꺼움이나 심한 무력감, 근육 경련이 나타난다면 ‘조금만 더 뛰자’고 버틸 때가 아니다. 즉시 운동을 중단하고 그늘이나 냉방이 되는 장소로 이동해 몸을 식히고 수분을 보충해야 한다.
특히 사람이 멍해지거나 말이 어눌해지고,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거나 의식이 흐려지는 상황은 차원이 다르다. 열사병 가능성이 있는 응급상황으로 보고 지체하지 말고 119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폭염 속 운동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체력이 약한 사람만이 아니다. 오히려 평소 운동을 많이 해 자신의 체력을 과신하는 사람이 속도와 거리를 끝까지 유지하려다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노년층과 심혈관질환·당뇨병 등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은 체온 조절과 순환계 부담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여름 운동의 목표는 기록을 깨는 데 있지 않다. 오늘의 날씨에 맞춰 운동량을 조절하고 무사히 운동을 끝내는 것 자체가 훈련이다.
‘아침에 뛸까, 저녁에 뛸까’를 고민하기 전에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기온은 몇 도인지, 습도는 얼마나 높은지, 햇볕과 지면의 열기는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내 몸이 오늘 이 더위를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지다.
폭염에서는 가장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빨리 속도를 낮출 줄 아는 사람이 오래 운동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