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갑자기 가족이 쓰러졌다. 의식이 흐려지고 호흡까지 이상하다. 119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판단한 가족은 환자를 승용차 뒷좌석에 태우고 가까운 응급실로 향했다.
문제는 꽉 막힌 도로였다. 운전자는 평소라면 절대 들어가지 않았을 버스전용차로로 차를 몰았다. 응급실에는 무사히 도착했지만 며칠 뒤 예상하지 못한 고지서가 날아왔다. 버스전용차로 위반 과태료였다. 카메라 여러 대를 지나왔다면 고지서가 한 장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럴 때 과태료를 모두 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응급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했다면 과태료를 면제받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환자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었다면 일반 승용차도 도로교통법상 ‘긴급자동차’로 인정될 수 있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15조는 원칙적으로 지정된 차량이 아닌 자동차의 전용차로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긴급자동차가 본래의 긴급한 용도로 운행되고 있는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긴급자동차가 반드시 구급차나 소방차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로교통법 시행령 제2조는 소방차·구급차 등과 별도로 ‘생명이 위급한 환자 또는 부상자를 운송 중인 자동차’도 긴급자동차로 본다고 규정한다. 자신의 승용차에 가족이나 지인을 태우고 병원으로 이동하는 상황도 환자의 상태가 위급하다면 법적으로 긴급자동차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과태료 면제 규정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142조는 교통법규 위반에 ‘부득이한 사유’가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로 ‘응급환자의 수송 또는 치료를 위한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경찰청도 2025년 법령해석 회신에서 이 규정을 근거로 관련 자료가 제출되면 과태료 면제 여부를 심의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따라서 응급환자를 태운 승용차가 버스전용차로 단속카메라에 찍혔다고 해서 고지서를 받는 순간 과태료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날 응급실에 갔다”는 사실만으로 자동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가벼운 감기나 단순 통증으로 응급실을 방문하면서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 버스전용차로를 달린 경우까지 모두 예외로 인정한다면 전용차로 제도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당시 상황에서 환자를 신속히 병원으로 옮길 필요가 있었는지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다.
응급실 진료비 영수증은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영수증만으로는 차량이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던 바로 그 시간에 환자가 얼마나 위급했는지까지 보여주기 어렵다.
따라서 과태료 사전통지서를 받았다면 응급실 진료확인서와 진료비 영수증, 응급실 접수·도착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 진단서나 의사 소견서 등을 함께 제출하는 것이 좋다. 여기에 차량 블랙박스나 내비게이션 이동기록 등을 보태면 단속 시각과 응급실 도착시간이 실제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령 오후 8시 35분 버스전용차로에서 단속된 차량이 오후 8시 50분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고, 당시 환자가 의식 저하나 심한 출혈, 호흡곤란 등의 증상으로 응급진료를 받은 사실이 확인된다면 단순히 교통체증을 피하려 전용차로를 이용한 차량과는 사정이 크게 달라진다.
대법원 판례도 주목할 만하다.
대법원은 1989년 한 교통사고 사건에서 병원으로 옮기던 부상자가 나중에 의학적으로 실제 생명이 위급한 상태가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더라도 당시 외견상 일반인이 생명이 위급하다고 판단할 정도였다면 환자를 운송하던 자동차를 긴급자동차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결과적으로 중병이 아니었다는 이유만으로 당시 운전자의 긴급한 판단이 무조건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과태료 통지서를 받았다면 대응 시기도 중요하다. 정식 과태료가 부과되기 전 사전통지 단계에서는 의견을 제출하고 관련 자료를 낼 수 있다. 이미 정식 과태료 부과 통지를 받았다면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 따라 통지를 받은 날부터 60일 이내에 해당 행정청에 서면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특히 응급실로 가는 한 번의 이동 과정에서 버스전용차로 단속카메라 여러 대에 연속으로 촬영됐다면 각각의 고지서를 따로 포기할 필요는 없다. 같은 환자를 같은 시간대에 응급실로 이송하던 하나의 연속된 상황이었다는 자료를 갖춰 해당 단속 건들에 대해 함께 소명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최종 면제 여부는 제출된 자료와 당시 상황을 토대로 관할 행정청이 판단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응급실 영수증이 있느냐’보다 왜 그 순간 버스전용차로를 달릴 수밖에 없었느냐다.
사람의 생명이 달린 순간까지 도로교통법이 버스전용차로의 파란 선만을 보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법은 이미 응급환자를 옮기는 상황에 예외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다만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다급함을 말이 아닌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