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족의 반전 … 부모와 살며 5년 만에 ‘1억 종잣돈’

  • 등록 2026.08.10 09:4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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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150만 원 저축 … 가족과 만드는 ‘5년 자산 프로젝트’

용인신문 |


 

“취업했으면 이제 부모 집에서 나가 살아야지.”

한때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얻으면 원룸이라도 얻어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집값과 전월세 가격, 생활비가 크게 오른 지금도 그것이 최선의 선택일까.

 

청년 10명 가운데 7명이 여전히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얼핏 보면 ‘캥거루족이 늘었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인다. 부모와 함께 살지만 자신의 생활비를 스스로 책임지는 청년은 오히려 빠르게 늘고 있다.

 

이제 부모 집에서 사는 청년을 무조건 ‘독립하지 못한 세대’로 바라보기보다 부모와 함께 사는 몇 년을 내 집 마련을 위한 ‘종잣돈 축적 기간’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가족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고용동향브리프 2026년 제5호’에 따르면 2024년 취업 후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는 ‘경제적 독립’ 청년은 전체의 75.4%에 달했다. 2021년 65.9%에서 불과 3년 만에 9.5%포인트 늘었다.

 

반면 부모와 떨어져 별도의 생활공간에서 사는 ‘주거 독립’ 비율은 30.4%에 불과했다. 2021년 26.4%에서 3년 동안 4.0%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뒤집어보면 청년 10명 가운데 약 7명은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모두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청년은 아니라는 점이다. 직장을 갖고 자신의 생활비를 부담하면서도 높은 집값과 월세 때문에 부모와 주거공간을 공유하는 청년이 상당수라는 의미다.

 

특히 수도권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선명하다. 수도권 청년의 경제적 독립률은 78.1%로 비수도권 72.3%보다 높았지만, 주거 독립률은 수도권이 27.8%로 비수도권 33.2%보다 오히려 낮았다.

 

일자리와 소득은 있지만 주거비 부담 때문에 부모 집을 떠나지 않는 청년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취업한 자녀에게 무조건 “언제 나갈 거냐”고 묻기보다 “5년 뒤 얼마를 들고 나갈 거냐”고 묻는 것이다.

 

부모가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면 취업 후 5년 정도 방과 식사 등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하고, 자녀는 그 대가로 월급의 절반 가까이를 반드시 저축하는 방식이다.

 

단순한 ‘얹혀살기’가 아니라 부모와 자녀가 함께 만드는 5년짜리 자산 형성 프로젝트다.

 

매달 150만 원을 모은다고 가정하면 1년에 1800만 원이다. 5년이면 투자수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9000만 원이 된다. 여기에 상여금이나 성과급을 보태거나 일부 자금을 장기 분산투자한다면 1억 원 안팎의 종잣돈을 마련할 가능성도 커진다.

 

물론 주식 등 투자상품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만큼 수익을 전제로 계획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취업 후 부모와 함께 살며 5년 만에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직장인 A씨는 “처음부터 5년만 부모님 집에서 살면서 월급의 절반 이상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며 “요즘은 예전처럼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회식이 크게 줄었고 혼자 운동하거나 집에서 쉬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불필요한 소비도 자연스럽게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월세와 관리비로 나갈 돈까지 매달 150만 원가량 꾸준히 저축하고 일부는 장기투자에 넣었다”며 “부모님 집에 산 5년이 독립을 늦춘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내 집 마련을 앞당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취를 시작하면 월세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관리비와 전기·가스요금, 통신비, 식비, 생활용품비가 줄줄이 따라붙는다. 월 70만~100만 원의 주거비를 내는 청년에게 5년은 수천만원의 차이를 만든다.

 

같은 월급을 받아도 어디에서 사느냐에 따라 30대 초반의 자산 규모가 크게 벌어질 수 있는 셈이다.

 

청년들의 소득 수준도 이런 전략에 주목하게 한다. 2024년 경제적으로 독립한 청년의 월평균 임금은 282만 9000원이었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청년의 193만 3000원보다 약 90만 원 높았다.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의 월평균 임금 역시 270만 6000원에 달했다.

 

‘돈을 못 벌어서 부모 집에 산다’는 과거의 캥거루족 공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다.

 

문제는 부모와 함께 사느냐가 아니다. 함께 사는 동안 무엇을 준비하느냐다.

 

부모 집에 살면서 월급 대부분을 자동차와 명품, 여행과 소비에 써버린다면 독립을 늦추는 생활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부모가 제공하는 주거 지원을 발판 삼아 매달 일정 금액을 저축하고 자산을 축적한다면 부모 집은 청년에게 가장 강력한 ‘자산 형성 인프라’가 될 수 있다.

 

부모의 역할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자녀의 모든 소비를 대신 부담하는 방식이 아니라 명확한 조건을 붙이는 것이다.

 

‘취업 후 5년’, ‘월급의 50% 저축’, ‘매달 자동이체’, ‘종잣돈은 주택 보증금이나 주택 구입에 우선 사용’과 같은 가족 간 약속을 세우는 방식이다.

 

자녀에게도 책임이 따른다. 부모의 지원을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집안일을 분담하고 자신의 생활비를 부담하면서 부모가 제공한 주거 환경을 자산을 만드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결국 캥거루족이라는 단어 자체를 다시 볼 때가 됐다.

경제적으로 독립했지만 부모와 함께 산다는 이유만으로 미성숙하거나 의존적인 청년으로 규정하기에는 주거환경이 너무 많이 변했다.

 

월세를 내며 통장 잔액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독립보다 부모와 몇 년 더 살며 1억 원 가까운 종잣돈을 만든 뒤 나가는 독립이 오히려 현실적일 수도 있다.

 

청년 10명 중 7명이 부모와 함께 사는 시대다. 자녀를 언제 내보낼지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내보낼지를 고민해야 한다.

 

“언제까지 부모 집에 살 거니?” 대신 “5년 뒤 얼마를 모아서 나갈 거니?”

고물가·고주거비 시대, 부모 집에서 보내는 5년은 독립을 미루는 시간이 아니라 생애 첫 집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5년이 될 수 있다.

김종경 기자 iyongi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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