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집은 한 채뿐이다. 팔지도 않았고 투기 목적으로 새 집을 산 것도 아니다. 그런데 직장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옮겼거나 손주를 돌보기 위해 자녀 집에서 몇 년을 지냈다면 세금은 달라질 수 있다.
정부가 부동산 세제의 기준을 ‘얼마나 오래 집을 갖고 있었느냐’에서 ‘그 집에서 실제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로 바꾸려 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논쟁이 커지고 있다.
부모 봉양과 육아, 직장 이동, 해외 체류, 재건축과 리모델링 등 시민들의 실제 생활은 세법이 정한 ‘실거주’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부동산 세제 개편안이 공개되자 불과 엿새 만에 3700건이 넘는 의견이 쏟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단순히 “세금이 많다”는 반발을 넘어 “살고 싶어도 살 수 없었던 기간까지 비거주로 봐야 하느냐”는 질문이 세제 개편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9일 법제처 국민참여입법센터에 따르면 재정경제부가 지난 4일 입법예고한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에는 이날 오전 11시 현재 2259건의 의견이 접수됐다.
양도소득세 체계를 손질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에도 1483건이 들어왔다. 두 법안에 접수된 의견만 3742건에 달한다.
이번 세제 개편의 핵심은 분명하다. ‘집을 오래 가진 사람’보다 ‘집에서 오래 산 사람’에게 세제 혜택을 더 주겠다는 것이다.
우선 1주택 단독명의자의 종부세 기본공제는 실거주자의 경우 현재 공시가격 12억 원에서 14억 원으로 높아진다.
반대로 실제 거주하지 않는 1주택자는 공제액이 12억 원에서 9억 원으로 줄어든다.
장기보유자에게 최대 50%까지 세액을 깎아주던 장기보유 공제 역시 2028년부터는 사실상 장기거주 공제로 전환된다.
15년 동안 집을 보유했다는 사실보다 실제 15년 동안 그 집에 살았는지가 세금 감면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
양도소득세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장기보유에 대한 공제보다 실제 거주기간을 중심으로 혜택을 주는 구조로 바뀌면서 2029년부터는 ‘얼마나 오래 보유했는가’보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의 중요성이 훨씬 커지게 된다.
문제는 사람의 삶이 한 집에서만 계속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부안도 이런 현실을 일부 반영했다. 1주택자가 1년 이상 살던 집을 떠나 취학이나 직장 변경·전근, 질병, 전학, 해외 체류, 부모 봉양 등의 이유로 다른 시·군으로 옮긴 경우에는 최대 3년까지 실제 살지 않은 기간도 거주기간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입법예고가 시작되자 ‘예외 사유가 너무 좁다’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대표적인 것이 육아와 가족 돌봄이다. 은퇴한 부모가 손주를 돌보기 위해 자녀가 사는 지역으로 옮겨 몇 년간 생활할 경우 본인 소유의 한 채뿐인 주택은 비어 있게 된다.
투자를 위해 집을 비운 것도 아니고 추가 주택을 구입한 것도 아니지만 현행 정부안대로라면 거주기간 산정에서 불리해질 가능성이 있다.
가족을 돌보기 위해 집을 떠났는데 결과적으로 세금이 늘어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냐는 문제 제기다.
정부도 이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다만 육아나 가족 돌봄을 폭넓게 예외로 인정할 경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수도권의 집을 전세로 돌려놓고 다른 지역에 거주하면서 가족 돌봄 등을 이유로 실거주 혜택까지 받는 식의 편법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진짜 불가피한 비거주’와 ‘세금을 줄이기 위한 비거주’를 어떻게 가려낼 것인지가 관건이다.
재건축·재개발과 리모델링 사이의 형평성 문제도 불거졌다. 정부안은 재개발이나 재건축으로 새 주택을 취득할 경우 정비사업 공사기간의 절반을 거주기간으로 인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주택법에 따른 대규모 리모델링 역시 주민이 장기간 집을 비우고 이주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이에 따라 리모델링으로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에서 생활한 기간 역시 재건축·재개발과 마찬가지로 일정 부분 거주기간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부부 공동명의 1주택자 문제도 논란거리다. 이번 개정안에서도 공동명의자는 한 명당 9억 원씩, 모두 18억 원의 기본공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비거주 공동명의 1주택자의 공제 한도는 내년부터 크게 줄어들게 돼 공동명의와 거주 여부에 따른 세 부담 차이가 또 다른 쟁점이 되고 있다.
정부가 고민하는 이유는 이번 개편의 정책 목표 자체가 ‘실거주자 우대’에 있기 때문이다. 예외를 지나치게 많이 인정하면 제도의 취지가 약해지고, 반대로 예외를 너무 좁게 두면 투기와 무관한 1주택자까지 세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지난 7일 방송 인터뷰에서 취학과 직장 변경, 질병, 해외 체류, 부모 봉양 등을 비롯해 실제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 국민 입장에서 살펴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최대 3년으로 설정된 비거주 인정기간 역시 불가피한 사례가 있다면 추가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예외를 지나치게 넓힐 경우 편법이 발생할 가능성도 경계했다.
결국 이번 부동산 세제 개편의 승부처는 세율 자체보다 ‘거주’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는 집을 투자 자산보다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는 사람에게 혜택을 집중시키겠다는 방향을 세웠다.
하지만 맞벌이와 지방 근무, 해외 파견, 부모 봉양, 손주 돌봄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주민등록상의 거주와 실제 삶의 형태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세무사 김모씨는 “‘집을 얼마나 오래 가졌느냐’에서 ‘그 집에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로 세금의 기준을 옮기는 것은 한 줄의 법 개정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한 사람의 직장과 가족, 돌봄과 이주까지 세법이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번 부동산 세제 개편의 최대 난제는 세금을 더 걷느냐 덜 걷느냐가 아니라, 투기 목적의 비거주와 불가피한 사정으로 집을 비운 1주택자를 얼마나 정교하게 가려낼 수 있느냐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