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배아이식을 앞둔 난임 여성의 팔에 우윳빛 수액 한 병이 연결된다. 난임환자들 사이에서는 흔히 ‘콩 주사’라고 불린다.
“면역을 낮춰 착상을 도와준다”
“반복착상실패나 유산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이식에 실패한 환자라면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주사의 정체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다름 아닌 ‘콩 주사’의 정식 이름은 인트라리피드(Intralipid)다. 애초 난임 치료를 위해 개발된 약이 아니다. 콩기름을 주성분으로 한 정맥용 지방유제로, 입으로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기 어려운 환자에게 열량과 필수지방산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양수액이다.
대표적인 20% 제제에는 콩기름과 난황 인지질, 글리세린 등이 들어간다. 하얗고 불투명한 액체가 천천히 정맥으로 들어가는 모습 때문에 난임 환자들 사이에서는 ‘콩 주사’라는 별칭이 붙었다. 난임이나 착상 개선은 본래 허가된 적응증이 아니다.
그렇다면 영양수액이 어떻게 난임병원의 ‘착상 보조주사’가 됐을까.
출발점은 면역이었다. 착상은 단순히 배아가 자궁벽에 붙는 과정이 아니라 배아와 자궁내막, 모체의 면역계가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과정이다. 반복착상실패와 반복유산 환자 일부에서 비정상적인 면역반응이 관여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자연살해세포, 이른바 NK세포를 비롯한 면역세포가 연구 대상으로 떠올랐다.
인트라리피드도 이 과정에서 주목받았다.
일부 실험과 초기 임상연구에서 지방유제가 NK세포의 활성을 떨어뜨리고 IL-2, TNF-α, IL-1β 등 염증 관련 신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면서다.
값비싼 면역글로불린(IVIG)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적고, 이미 병원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던 영양수액이라는 점도 처방 확산의 문턱을 낮췄다. ‘면역을 조절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착상을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임상적 기대와 결합하면서 난임 보조치료의 하나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의학적 논란이 시작된다. NK세포 수치가 달라졌다는 것과 실제 임신이 늘었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고, 임신이 늘었다는 것과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 역시 전혀 다른 문제다.
난임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결과는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이 아니라 생아출산이다. 임신이 확인됐더라도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치료가 건강한 출산까지 이어졌는지를 봐야 한다. 그런데 인트라리피드는 이 마지막 문턱에서 아직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10일 발표한 ‘임신 목적 인트라리피드 주사제 적정 사용을 위한 근거창출 연구’에서도 이런 한계가 확인됐다.
NECA가 최근 10년간 발표된 국제 임상진료지침 11편을 분석한 결과 7편이 인트라리피드 사용을 권고하지 않거나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최근 발표된 지침일수록 비권고 기조가 뚜렷했다.
연구 결과도 한 방향을 가리키지 않았다.
일부 무작위배정시험에서는 인트라리피드를 투여한 환자의 임상적 임신율이 높아지는 결과가 나타났지만 연구 규모가 작고 근거 수준도 낮았다.
반면 비무작위 연구에서는 투여군의 유산율이 오히려 높게 나타난 결과도 있었다. 효과가 있다면 어느 환자에게, 어떤 시점에, 어떤 용량으로 투여해야 하는지조차 표준화돼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국제 학회 역시 비슷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유럽생식의학회(ESHRE)는 반복착상실패 환자에게 인트라리피드를 투여한 일부 연구에서 임신율이나 생아출산율이 높아진 결과가 있다는 점을 검토했지만, 연구 규모가 작고 대상 환자와 투여 방식이 제각각이라는 이유로 정맥 인트라리피드 투여를 권고하지 않고 있다.
면역학적 원인이 명확히 확인된 환자를 선별해 치료했다기보다는 반복 실패 환자에게 경험적으로 사용된 연구가 많았다는 점도 근거의 신뢰도를 낮추는 요인이다.
안전성 역시 ‘원래 영양수액이니까 괜찮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인트라리피드는 음식이나 건강기능식품이 아니라 정맥으로 직접 투여하는 의약품이다. 콩이나 계란, 땅콩 성분에 심한 알레르기가 있는 환자는 주의가 필요하고, 고지혈증이나 지방대사 이상, 중증 간질환 등이 있는 경우에도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지방유제 사용 과정에서는 드물지만 간기능 이상, 혈소판 감소, 지방과부하증후군 같은 부작용도 알려져 있다.
난임환자들이 인트라리피드와 함께 자주 듣는 또 다른 이름이 면역글로불린, 즉 IVIG다. 하지만 두 주사는 전혀 다른 약이다. IVIG는 여러 사람의 혈장에서 정제한 IgG 항체를 정맥으로 투여하는 혈액제제로, 자가항체 중화와 면역세포 조절 등을 목적으로 사용된다.
반면 인트라리피드는 콩기름을 중심으로 만든 지방유제다. 작용 방식도, 성분도 다르다. 다만 두 치료 모두 반복착상실패나 반복유산에서 ‘면역조절’을 목적으로 시도돼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IVIG 역시 일부 연구에서는 효과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충분한 무작위시험이 부족하고 혈전색전증이나 용혈, 신장 이상, 알레르기 반응 등 부작용 가능성이 있어 국제 학회들은 일상적인 난임 보조치료로 권고하지 않는다. 결국 인트라리피드가 IVIG보다 값이 싸고 비교적 익숙한 수액이라는 이유만으로 ‘효과가 비슷한 대체재’라고 단순화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데 국내 의료현장의 풍경은 국제 지침과 적지 않은 차이를 보였다.
NECA가 보조생식술을 시행하는 산부인과 전문의 70명을 조사한 결과 54.3%가 인트라리피드를 경험적으로 처방하고 있다고 답했다.
처방 이유로는 ‘좋은 결과에 대한 기대’와 ‘부작용이 비교적 적다고 판단해서’라는 응답이 많았다. 반대로 처방하지 않는 의사들은 ‘치료 효과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치료 경험이 있는 환자 177명 가운데 63.3%는 의사의 권유로 주사를 선택했다고 답했다.
숫자가 보여주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의료진’의 문제라기보다, 근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래도 혹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실제 진료를 움직이고 있다는 현실에 가깝다.
난임 치료에서는 이런 ‘혹시’가 특히 강하게 작동한다. 이미 몇 차례 배아이식에 실패한 환자에게 “효과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해볼 수 있다”는 말은 다른 치료 영역보다 훨씬 크게 들린다. 다음 이식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비용과 주사 한두 번을 더 감수해서라도 가능한 것은 모두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반복착상실패와 반복유산은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되는 질환이 아니다. 배아의 염색체 이상과 발달 능력, 자궁강 구조와 자궁내막 상태, 갑상선이나 당뇨 같은 내분비 문제, 혈전성 질환, 부모의 유전적 이상 등 여러 원인이 얽혀 있을 수 있다. 면역학적 원인 역시 그중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다른 원인을 충분히 살피지 않은 채 “NK세포가 높아서 착상이 안 된다”거나 “면역이 강하니 낮춰야 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현재 의학적 근거와 거리가 있다.
더구나 ESHRE는 반복착상실패 환자에게 말초혈액 NK세포나 자궁 NK세포 검사를 일상적으로 시행하는 것조차 권고하지 않는다. 검사방법과 정상범위가 충분히 표준화돼 있지 않고, 특정 수치가 높다고 해서 그것이 곧 착상 실패의 원인이라는 사실도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NECA 연구가 던지는 질문은 ‘콩 주사를 맞아도 되는가’라는 단순한 찬반이 아니다. 난임 치료에서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 확인됐을 때 환자에게 치료로 권할 수 있는가, 그리고 효과가 불분명한 보조치료를 권할 때 의료진은 어디까지 설명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다.
NECA 박동아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임상 현장에서 인트라리피드 주사제가 오랫동안 사용돼 왔지만 의학적 근거나 국제적 권고는 충분하지 않다”며 불확실한 근거 수준과 잠재적 위해성, 비용 등을 사전에 환자에게 정확히 알리고 함께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공유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콩 주사’ 논란은 결국 우윳빛 수액 한 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난임 치료 현장에서 ‘가능성이 있는 치료’가 언제부터 ‘당연히 맞아야 하는 주사’가 되는가를 묻는 문제다.
면역세포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임신을 늘린다는 것은 다르고, 임신율이 조금 높아졌다는 것과 건강한 아이의 출산을 늘린다는 것도 다르다. 그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의학적 근거다.
지금 인트라리피드에 가장 부족한 것도 바로 그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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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산부인과·생식의학 분야의 임상 경험과 최신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성한 것입니다. 특정 개인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체하지 않으며, 실제 의학적 판단은 전문의 상담을 통해 이뤄져야 합니다.
※ 이미지: AI 생성 (ChatGPT, OpenAI) /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시각 자료입니다.
※ 이 기사는 아기성공연구소 제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