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그렇구나> “혀가 뇌를 속인다?”

  • 등록 2026.08.09 13:4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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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할 때 얼큰한 국물이 당기는 이유

 

용인신문 | 삼겹살이나 곱창을 먹고 나면 꼭 찾게 되는 게 있다. 얼큰한 찌개다. 중국집에서도 탕수육과 볶음밥을 배불리 먹고 나서 짬뽕 국물 한 숟갈을 떠먹으면 “아, 이제 좀 살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배는 분명 더 불러졌는데 속은 오히려 개운해진 것 같다.

 

우리는 흔히 “기름기가 싹 내려갔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사실 매운 국물이 위에 들어간 기름을 씻어내는 것은 아니다. 얼큰한 국물을 먹은 뒤 느끼함이 사라진 것처럼 느끼는 데는 혀와 뇌가 꽤 큰 역할을 한다.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이 입안에 들어오면 열과 통증을 감지하는 수용체가 자극된다. 입안이 갑자기 화끈해지고 침이 돌며 때로는 땀이나 콧물까지 난다. 조금 전까지 입안을 차지하고 있던 기름지고 텁텁한 느낌보다 훨씬 강한 자극이 새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매운맛 쪽으로 옮겨간다. 느끼함이 없어졌다기보다 느끼함을 느끼던 감각이 뒤로 밀리는 셈이다.

 

뜨거운 국물도 한몫한다. 뜨끈한 온도에 매운맛, 짠맛, 김치나 양념에서 오는 새콤한 맛까지 더해지면 입안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침 분비도 늘어난다. 방금 전까지 입안에 남아 있던 고기의 기름진 맛이 덜 느껴지면서 사람은 이를 ‘개운하다’고 받아들인다.

 

삼겹살 뒤에 김치찌개가 맛있고, 기름진 중국요리 뒤에 짬뽕 국물이 유난히 반가운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회를 잔뜩 먹고도 매운탕 배가 따로 있다는 말 역시 단순히 식탐 때문만은 아니다. 앞에서 먹은 음식과 전혀 다른 강한 맛이 들어오면서 입맛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짬뽕과 라면이다. 속이 느끼하다며 찾는 음식이지만 두 음식 자체도 결코 담백하지 않다. 국물에 기름과 나트륨이 적지 않은데도 먹는 사람은 “기름기가 내려갔다”고 느낀다. 몸속의 지방이 줄어서가 아니라 매운맛이 입안의 감각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기름진 음식을 먹고 난 뒤 생기는 더부룩함은 조금 다른 문제다. 지방이 많은 음식은 위에서 소화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배가 꽉 찬 느낌이나 트림, 메스꺼움이 생길 수 있다. 캡사이신이 위장 운동과 감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들도 있어 사람에 따라서는 매운 음식을 먹은 뒤 답답함이 조금 덜해졌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고 속이 불편할 때마다 얼큰한 국물을 약처럼 찾을 필요는 없다.

 

입에서는 시원할지 몰라도 위는 그렇지 않을 수 있어서다. 평소 속쓰림이 있거나 위산이 잘 역류하는 사람은 매운 음식을 먹은 뒤 오히려 가슴이 타는 듯하거나 속이 더 불편해질 수 있다. 술을 마신 다음 날 얼큰한 라면이나 짬뽕이 당기는 것도 같은 이유로 설명할 수 있지만, 이미 술에 자극받은 위에는 지나치게 맵고 짠 음식이 부담이 될 수 있다.

 

결국 고기를 잔뜩 먹고 김치찌개 국물을 한 숟갈 떠먹은 뒤 “캬, 기름기가 싹 내려간다”고 말하는 순간 실제로 뱃속이 깨끗해진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기름의 양보다 우리가 느끼는 맛이다.

 

느끼한 맛 위에 더 강한 매운맛이 들어오고, 혀가 그 신호를 뇌에 보내면서 조금 전의 불쾌한 감각을 밀어낸다.

 

그러고 보면 “얼큰한 걸 먹으니 속이 풀린다”는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셈이다. 속이 아니라, 먼저 풀린 것은 우리의 입맛일지도 모른다.

박숙현 기자 yonginc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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