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 지역 농가들과 손 잡고 35가지 한약재 부산물 첨가한 사료 먹여
고기 특유의 비릿한 잡냄새 사라지고 육질 부드러우면서 고소·쫄깃
용인신문 | “오직 한길을 걸었습니다. 처음과 지금이 환경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첫날과 같습니다. 몸이 허락하는 한 소비자의 건강과 맛을 지키는 이 길을 부지런히 걸어가겠습니다.”
수도권의 역동적인 변화 속에서 도시와 농촌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곳, 바로 용인이다. 오늘날 인구 110만의 거대 특례시로 변모했지만, 그 뿌리에는 지역의 토지와 물, 그리고 사람의 정직한 땀방울로 일궈낸 ‘축산 메카’로서의 역사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1999년 수입육 개방의 거센 파도와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 사라져가던 용인 양돈의 자부심을 일으켜 세우고 용인시 최초의 명품 한방 돈육 브랜드 ‘용인성산포크’를 탄생시킨 인물, 바로 ㈜가은MPC의 이호선 대표다. 처인구 양지면 전용 가공공장에서 용인 축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유산을 지켜가는 그를 만났다.
■ 삼성 이병철 회장의 애민 정신과 용인 양돈의 뿌리
이호선 대표가 기억하는 용인 축산의 시작점은 삼성 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낙후된 한국 축산업을 이끌고자 했던 이병철 회장이 용인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에 우수 연구진을 모으고 삼원교잡종(LYD) 종자를 정형화하면서 용인 양돈의 기틀이 마련됐습니다. 기후, 토지, 깨끗한 지하수까지 갖춘 용인은 한때 전국 군 단위에서 돼지사육 두수가 가장 많았던 대표적인 양돈 메카였습니다.”
당시 농가 부업 수준이었던 양돈은 선진 사육 기법의 도입으로 빠르게 변화됐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기흥, 수지 등 서부권 중심의 폭발적인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양돈 농가들은 악취 민원에 시달렸고 점차 처인구 백암 등 외곽 시골 지역으로 밀려나며 입지가 좁아졌다.
1999년 용인 축산기업조합장에 당선된 이호선 대표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당시 용인 인구는 불과 20만 명 남짓. 농가와 정육업자 모두 ‘먹고살기 위한 호구지책’으로 축산을 이어가던 시절이다.
“당시는 농가에서 돼지를 사다가 단순 도축해 파는 1차 유통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지역 대표 브랜드라던 ‘백옥쌀’조차 품질 관리 실패로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것을 보게 됐죠. 단순한 애향심만으론 생존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철저한 품질 표준화와 차별화된 브랜드만이 용인의 축산인들과 지역 정육점 조합원들이 대형마트의 공세 속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했습니다.”
■ ‘용인성산포크’ 한방 사료로 차별화 완성
이 대표는 용인의 도농 상생과 우뚝 선 기상을 상징하는 석성산의 이름을 따 브랜드명을 ‘용인성산포크’라 정했다. 하지만 이름만 붙인다고 브랜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전국 어디서나 똑같이 키우는 돼지와의 확실한 차별화가 필요했다.
그는 전국을 누비며 연구 자료를 뒤진 끝에 부산 부경대학교의 ‘한약재 투여 돼지 연구 논문’을 접했다. 곧바로 백암 지역 뜻있는 농가들과 손을 잡았다. 생후 3개월간의 이유 과정을 마친 돼지에게 출하 전까지 90일 동안 35가지 한약재 부산물을 첨가한 독자적 사료를 먹이는 실험을 시작했다.
“한약재 사료를 먹인 돼지는 고기 특유의 비릿한 잡냄새가 사라지고 육질이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하고 쫄깃해졌습니다. 콜레스테롤 감소 효과는 물론 돼지 자체의 면역력이 높아져 피부에 윤기가 흐르고 분뇨 냄새까지 현저히 줄어들었죠.”
초기에는 한방 사료 비용으로 인한 생산비 증가와 한방 명칭 사용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브랜드명을 ‘성산포크’로 다듬고 브랜드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이 대표는 서두르지 않는 ‘우직한 진정성’을 택했다. 용인 봄꽃 축제, 용인마라톤 대회 등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마다 찾아가 직접 고기를 구워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구전에 의한 입소문은 더디지만 품질에 대한 신뢰를 가장 확실하게 다지는 길이었다.
■ 위기를 극복한 상생과 연대… ‘백년대계’ 가공장 결실
30여 년 세월이 항상 순탄했을까? 구제역 파동으로 백암 지역의 계약 농장 돼지들이 매몰 처분되는 비극을 겪었고, 농가들의 이탈과 복귀로 인한 수급 불균형이라는 혹독한 시련도 찾아왔다.
그때마다 이 대표를 일으킨 것은 용인 지역 생태계와의 깊은 연대였다. 축산과 공무원들의 행정 지원, 예산을 뒷받침한 시의회, 어려울 때 믿고 함께해 준 백암 지역 7개 협력 농가와 30여 명의 임직원들이 있었기에 성산포크는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학교급식 납품을 위해 HACCP 인증과 경기도 G마크를 획득하고 봉침액을 활용한 무항생제 사육을 실현한 성산포크는 현재 용인, 수원, 성남 등 수도권 160여 개 학교급식과 70여 곳의 정육점·대형식당으로 판로를 넓혔다.
지난 2025년 8월, ㈜가은MPC는 경기도와 용인시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처인구 양지면에 최첨단 제2전용 가공공장을 완공하고 성대한 준공식을 가졌다. 오랜 숙원이던 현대식 자가 공장을 구축함으로써 위생과 가공 효율성을 완벽히 확보하고 직원들에게 자부심을 안겨주는 ‘백년대계’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 조합을 넘어 주식회사로… 모두가 주인 되는 ‘진짜 상생’
오늘날 ㈜가은MPC가 구축한 견고한 상생 모델은 기존 축산기업조합이라는 틀을 과감히 깨부순 주체적인 결단에서 시작됐다.
이 대표는 단순히 조합 차원의 이익에 머무르거나 한계에 봉착했던 구조에서 벗어나고자 2000년부터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주식회사 전환을 위한 출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6년간의 치밀한 준비 끝에 결국 ㈜가은MPC를 출범시켰다.
특히 ㈜가은MPC는 충성도, 이용고, 근무 연한 등을 면밀히 반영해 주식을 배분함으로써 생산자(농가)와 판매자(정육점), 현장의 소속 직원 모두가 주주로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주민 주주형 주식회사’로 거듭났다.
“농가 사장님들도, 우리 가공공장 직원들도, 유통을 책임지는 정육점 사장님들도 모두 회사의 주인입니다. 주식회사로 함께 성장하고 브랜드가치가 높아지면 농가를 은퇴하거나 퇴직할 때 그 주식이 몇 배의 가치 있는 노후 자금과 결실로 돌아갑니다. 특정인에게 이익이 편중되지 않고 생산-가공-유통-소비로 이어지는 모든 주체가 균형 있게 잘사는 구조를 만든 것이 ㈜가은MPC의 진짜 힘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포즈를 취하는 이호선 대표의 손마디에는 30년 넘게 축산 현장을 누벼온 장인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용인이라는 도시가 거대하게 팽창하고 첨단 산업도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도 용인 시민의 식탁에 가장 안전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올리겠다는 이 대표의 고집은 단 한 번도 꺾인 적이 없다. ‘성산포크’와 ㈜가은MPC는 단순한 돼지고기 브랜드나 기업이 아니다. 도시화의 그늘 속에서 지역 농가와 상인, 직원을 하나로 묶어낸 위대한 상생의 기록이자 용인 축산업의 옛 영광을 오늘날의 명품으로 부활시킨 한 인물의 묵묵한 서사시다.
“세월이 흘러 환경은 끊임없이 바뀌겠지만 처음 마음을 잊지 않고 신뢰를 지켜가는 것. 그것이 제가 용인이라는 땅과 사람들에게 남길 수 있는 마지막 유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