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생계를 위해 투잡을 선택하는 공무원들이 늘고 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낮에는 민원인을 상대하고 행정서류를 처리하지만, 퇴근 뒤에는 대리운전 호출을 기다리는 공무원이 늘어나고 있다.
한때 안정적인 직업의 대명사였던 공무원이 본업을 마친 뒤 또 다른 노동 현장으로 향하는 모습은 공직사회에 번지는 ‘투잡’이 단순한 취미나 자아실현을 넘어 생계를 위한 선택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튜브와 온라인 강의, 집필처럼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겸직도 있지만, 대리운전과 배달, 청소, 음식점 아르바이트 등 생활비를 벌기 위한 생계형 부업도 적지 않다.
낮은 보수와 고물가, 주거비 부담이 겹치면서 하위직과 저연차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공무원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빠듯하다”는 호소가 이어진다.
공직자의 영리업무는 원칙적으로 제한되며 다른 업무를 겸하려면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생계가 급한 일부 공무원이 허가 없이 부업에 나섰다가 징계를 받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공무원의 겸직 신고는 최근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유튜브와 개인 방송, 온라인 콘텐츠 제작, 강의, 집필, 부동산 임대 등 겸직 형태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의 발달로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을 수익으로 연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지만, 공직사회에서는 이해충돌과 공정성 훼손을 막기 위한 엄격한 기준도 함께 요구된다.
최근에는 영리활동 제한 규정을 위반하거나 허가 없이 겸직한 사실이 적발돼 견책과 감봉은 물론 정직과 해임 처분을 받은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단순한 공직기강 해이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최근 수년간 이어진 물가 상승과 생활비 부담에도 공무원 보수는 이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했고, 특히 저연차 공무원일수록 실질임금 감소를 체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치솟는 주거비와 교육비, 육아비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공직의 장점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공직 이탈에서도 나타난다. 신규 공무원의 조기 퇴직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공무원 채용시험 경쟁률도 과거보다 크게 낮아졌다.
현직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공직 기피의 가장 큰 이유로 ‘민간보다 낮은 보수’가 반복해서 지목됐다.
정년 보장과 연금이라는 전통적인 장점만으로는 우수 인재를 공직으로 끌어들이거나 붙잡아 두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는 평가다.
한국의 공무원 보수를 해외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대체로 10년 안팎 경력의 중견 공무원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월 실수령액은 직급과 수당에 따라 300만 ~ 400만 원대가 일반적이다.
반면 일본은 400만 ~ 500만 원대, 프랑스는 500만 원 안팎, 독일은 500만 ~ 600만 원대, 싱가포르는 600만 원 이상을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가마다 세금과 연금, 수당 체계가 달라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지만, 주요 선진국은 민간 임금과 물가 상승을 반영해 공무원 보수를 조정하는 반면 한국은 최근 몇 년간 실질임금이 정체되면서 공직의 상대적 매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문제는 절대적인 연봉보다 민간과의 임금 격차가 확대되고 생활비 상승을 보수가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에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일본은 독립적인 인사원이 민간기업 임금 수준을 조사해 공무원 보수 조정을 권고하고, 독일과 프랑스는 물가와 경력, 직무 난이도를 반영한 보수 체계를 운영한다.
싱가포르는 우수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일부 고위 공무원의 보수를 민간 전문직 임금과 연계하는 제도도 운용하고 있다.
공무원 보수를 단순한 인건비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로 보는 시각이 강한 이유다.
정부 관계자는 “공무원의 겸직을 무조건 허용할 수는 없다”며 “공직자는 정책과 예산, 인허가 등 공적 권한을 행사하는 만큼 외부 영리활동이 이해충돌이나 공정성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공직윤리를 강화하는 동시에 공무원이 생계를 위해 부업을 찾지 않아도 되는 수준의 보수 체계와 명확한 겸직 기준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무원들의 생계형 겸직은 오늘의 한국 공직사회가 안고 있는 처우와 인재 유출, 공공성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회적 신호다.
공직이 더 이상 사명감만으로 유지되기 어려운 시대, 공직의 신뢰를 지키면서도 공무원이 생계 걱정 없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보수 체계와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