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새 생명을 품에 안는 순간 부모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아기가 아니라 병원 계산서였다. 병원에 머문 시간은 고작 이틀. 하지만 청구된 금액은 2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000만원에 달했다. 진통제 한 알은 4만원, 의사가 병실에 머문 3분은 900만원으로 계산됐다. 한 장의 출산비 명세서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의료 시스템으로 불리는 미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전 프로미식축구(NFL) 선수 아이작 로셸의 아내이자 인플루언서인 앨리슨 쿠치가 둘째 아이 출산 후 받은 병원비 내역을 공개하면서 의료비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공개된 영상은 수백만 회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했고, 미국인들은 물론 해외 네티즌들까지 “아이를 낳는 비용이 집 한 채 계약금 수준”이라는 반응을 쏟아냈다.
명세서에는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금액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진통 유도를 위한 약물 투여에는 1100달러(약 160만원), 무통분만 약제에는 560달러(약 85만원)가 청구됐다. 가장 큰 논란은 누구나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이부프로펜이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한 알의 가격이 28달러, 우리 돈으로 약 4만원이었다.
병실 이용료도 충격적이다. 출산 전 머문 개인 분만 대기실은 하루 3200달러(약 470만원), 출산 후 병실 역시 같은 금액이 부과됐다. 여기에 '자연분만 레벨2'라는 이름의 항목으로 9993달러(약 1480만원)가 추가됐다. 환자조차 “레벨2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담당 의사의 회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쿠치는 “의사가 침대 곁에 머문 시간은 3분 정도였다”고 했지만 청구서에는 6185달러, 우리 돈 약 900만원이 적혀 있었다. 의료행위의 가치보다 비용 산정 체계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 의료비는 총액보다도 보험 구조 때문에 더 복잡하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하지만 보험 적용 이후에도 상당한 본인 부담금을 내야 한다. 이번 사례 역시 보험사가 상당액을 부담했지만 산모는 최종적으로 약 1500달러를 직접 지불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자연분만 비용이 3만~4만 달러를 넘어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의 출산 비용이 세계 최고 수준인 이유는 민간보험 중심의 의료체계에 있다. 병원은 의료행위마다 개별 가격을 책정하고, 보험사와 병원 간 계약에 따라 실제 지급액이 달라진다. 여기에 높은 의료인건비와 의료소송 위험에 따른 보험료, 복잡한 청구·심사 행정비용까지 더해지면서 의료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같은 분만이라도 병원마다 가격 차이가 수천만 원씩 벌어지는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이다.
반면 다른 선진국들은 출산을 공공서비스로 바라본다. 영국은 국가보건서비스(NHS)를 통해 대부분의 출산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고, 캐나다와 노르웨이, 스웨덴 등도 공공의료 체계 아래 본인 부담이 거의 없다. 호주 역시 공공병원을 이용하면 출산비가 사실상 무료에 가깝다. 출산을 개인의 소비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질 미래 투자로 보는 것이다.
미국 역시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출산 장려 정책보다 먼저 의료비 부담을 해결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변화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실제 미국에서는 임신과 출산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대출을 받거나 신용카드 빚을 지는 가정도 적지 않다. 일부 연구에서는 의료비 부담이 임신을 미루거나 둘째 출산을 포기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이번에 공개된 영수증은 한 인플루언서의 개인 경험이지만, 미국 부모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생명의 탄생은 누구에게나 축복이어야 하지만, 미국에서는 출산과 동시에 거액의 계산서를 받아드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아이를 낳는 순간조차 비용을 먼저 계산해야 하는 의료 시스템이 과연 지속 가능한가. 한 장의 병원비 명세서가 미국 사회에 다시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