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정부가 용인 첨단시스템반도체 국가산업단지(이하 용인 국가산단)의 완공 목표를 기존 계획보다 7년 앞당기겠다는 파격적인 청사진을 내놓으면서 대한민국 최대 산업 프로젝트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은 직접 매달 ‘메가프로젝트 민관합동 점검회의’를 주재하겠다고 밝히며 “그야말로 오직 속도전이 중요하다”고 선언했다.
행정절차를 전면 개편하고 부지 확보와 강제수용 절차를 동시에 진행해서라도 기업의 투자 시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산업 현장의 실상은 그리 녹록지 않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투자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방향성에는 이견이 없지만, 정작 반도체 공장을 돌리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인 ‘토지’, ‘전력’, ‘용수’ 확보가 심각한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구상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부와 정치권, 지자체, 민간 기업이 하나의 ‘원팀’으로 움직여 인프라 방정식부터 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 토지 보상 ‘지지부진’
용인 국가산단 조기 완공을 위한 첫 번째 아킬레스건은 ‘토지 확보’다.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생산시설(팹·Fab)이 들어설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남사읍 일대 부지는 지난해 말부터 보상 절차가 시작됐지만, 현재 토지 매입률은 37.7%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성훈 신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취임 직후 용인 현장을 찾아 “매주 실적을 직접 점검하겠다”며 시공책임형CM 방식으로 이달 중 공사를 발주하고 연내 조기 착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현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나머지 60%가 넘는 토지가 보상금 산정을 둘러싼 지자체·주민 간 이견으로 재결 절차를 밟고 있거나, 일부 소유주의 버티기성 ‘알박기’로 인해 협의가 전면 중단됐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부랴부랴 “협의 취득과 강제 취득(수용) 절차를 동시에 착수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 같은 조기 착공 지연 우려를 의식한 행보다.
대규모 산단 개발에서 토지 보상은 전체 사업 속도를 결정하는 첫 관문인 만큼, 이 단계에서 수개월이 지연되면 2028년 팹 1호기 착공이라는 LH의 패스트트랙 목표 역시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밖에 없다.
■ 15GW 전력 공급 과제… 발전소떮송전망 동시 추진 필요
토지 보상이 눈앞의 장벽이라면, 전력 공급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생사여탈권을 쥔 ‘진짜 과제’다.
반도체 공장은 미세 공정을 유지하는 클린룸과 거대 노광장비를 24시간 중단 없이 돌려야 하므로, 단 0.1초의 미세한 전압 강하조차도 수천억 원의 웨이퍼 폐기 손실로 이어진다.
문제는 규모다. 용인에 들어서는 삼성전자 국가산단과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완전히 가동될 경우 필요한 전력은 무려 15GW(기가와트)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대한민국 전체 전력 소비량의 상당 부분을 단일 지역이 흡수하는 셈이다. 현재 정부는 산단 내에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소를 건설해 약 3GW를 자체 조달하고, 나머지 부족분은 외부에서 끌어온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외부 전력망을 연결할 송전선로 확충이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 외부에서 전력을 끌어오려면 다른 지역에 대규모 송전탑과 선로를 건설해야 하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선로 통과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과 지역 간 이해관계 충돌을 야기한다.
실제로 과거 SK하이닉스의 용인 산단 역시 송전선로 인허가 문제로 착공까지 6년이라는 세월을 허비한 바 있다.
신속한 발전설비 인허가와 전력 계통 개선을 위한 전방위적 중재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공장은 지었으나 불을 켜지 못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나올 수 있는 셈이다.
■ ‘산업용수’ 공급망 인프라… 환경 규제 ‘장벽’
막대한 양의 초순수(Ultra Pure Water)를 소모하는 반도체 공정 특성상, 하루 수십만 톤에 달하는 산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수로 건설도 시급한 당면 과제다.
용인 산단 인근 지자체와 강물 취수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천 유량을 둘러싼 인근 경기 광주시 등 지자체들의 상생 지원책 요구와 환경적 부담에 대한 청구서가 계속해서 날아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년이 걸리는 환경영향평가 등의 절차도 속도전의 걸림돌로 꼽힌다. 청와대는 “기존 환경평가 결과를 최대한 원용해 기간을 대폭 단축하겠다”고 발표했으나, 환경 단체와 인근 농촌 지역 주민들은 대규모 송전선로와 환경 파괴 우려를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가 초격차 경쟁력을 위해 행정 절차를 무조건 건너뛰는 방식이 자칫 더 큰 법적·사회적 소송전으로 번져 사업을 장기 표류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국운 걸린 프로젝트… ‘원팀 실행력’ 절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대한민국이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수백조 원 규모의 ‘국가 명운이 걸린 메가 프로젝트’다.
정부와 청와대가 특별법 제정과 미래대응기금 신설을 논의하며 정책적 가속도를 내고 있고, 더불어민주당 등 정치권도 예산 지원체계 확대를 약속한 것은 고무적인 신호다.
그러나 정부의 선언적 ‘속도전’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서류상의 행정절차 단축을 넘어 발로 뛰는 실행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정치권, 지자체, 그리고 삼성·SK 등 대기업이 유기적인 ‘원팀’ 체제를 구축해 현장의 걸림돌을 하나씩 제거해 나갈 때 비로소 대한민국 반도체 초격차의 청사진은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는 분석이다.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과 남사읍 일대 777만3656㎡(약 235만 평) 부지에 들어서는 '용인 첨단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조감도. 이곳에는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 생산공장(Fab) 6기를 단계적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이 사업은 2023년 3월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지정된 이후 각종 인허가와 보상 등 행정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일 이재명 대통령이 3대 메가프로젝트 민관합동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팹 건축이 진행 중인 원삼면 SK하이닉스반도체 클러스터 공사 현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