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한때 영화관은 사랑을 배우는 곳이었다. 1980~90년대 스크린에는 늘 애틋한 사랑이 있었다. 멜로물은 물론 액션 영화조차 사랑이 빠지면 성립되지 않았다. 첫사랑을 꿈꾸게 했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삶을 동경하게 했으며, 사랑 하나로 세상을 견디는 힘이 영화 속에 있었다. 그 시절 젊은이들의 로망은 세속적인 성공보다 사랑이었다. 하지만 지금 스크린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요즘 화제가 되는 영화와 드라마를 떠올려 보라. 마약, 도박, 사기, 조직 폭력, 복수…. 그 중심에는 예외 없이 살인이 있다. 평범한 죽음이 아니라 연쇄살인, 사이코패스, 시체 훼손 같은 잔혹범죄가 흥행 공식처럼 반복된다. 재미와 몰입감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끔찍함에 대한 ‘익숙함’이다. 처음엔 눈을 돌렸던 장면이 두 번째엔 덜 충격적이고, 다섯 번째엔 아무 감정 없이 지나간다. 반복되는 자극에 적응하는 심리학적 ‘둔감화’ 현상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사람의 죽음을 비극이 아닌 오락으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현실은 어떠한가. 최근 우리 사회는 상상조차 어렵던 흉악범죄를 잇달아 겪었다. 도심 흉기 난동은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남겼고, 안전지대라 믿었던 학교 내 사건은 사회 근간을 흔들었다. 이상 동기 범죄는 이제 낯선 단어가 아니다. 국민은 충격에 빠지지만 며칠 뒤엔 또 다른 비극이 이전 사건을 밀어낸다. 범죄 증가보다 무서운 건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메마른 감정이다. 온 사회가 슬퍼했을 사건도 하루 이틀이면 관심 밖이다. 죽음은 애도가 아닌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
범죄를 다루는 작품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범죄를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가, 단순 흥밋거리로 소비하는가이다. 문화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자 내일의 설계도다. 대중이 무엇을 보고 이야기하는가는 그 사회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 보여준다. 사랑을 노래하던 시대엔 사랑이 청춘의 꿈이었고, 가족을 이야기하던 시대엔 가족이 삶의 중심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가.
언론과 미디어의 책임은 가볍지 않다. 사실 전달을 넘어,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고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시청률을 위해 자극적 범죄를 반복 소비시킨다면 사회는 결코 건강해질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잔혹한 살인마의 서사가 아니다. 생명을 존중하고 타인을 위해 희생하며, 연대로 위기의 공동체를 지켜내는 이야기다. 선함이 악을 이긴다는 굳건한 믿음을 주는 이야기다.
한 사회는 자신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이야기의 모습을 어김없이 닮아간다. 다음 세대가 범죄자의 치밀함을 기억하는 삭막한 사회가 아니라, 사랑과 희생, 용기와 책임을 꿈꾸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문화가 가야 할 방향이며 언론이 끝까지 지켜야 할 존재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