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혹시 ‘생활습관형 난임’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난임의 원인을 자궁이나 난소, 정자 같은 생식기관 자체에서 찾는다. 그러나 실제 인간의 생식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전신 시스템의 결과물이다. 심장이 건강해야 하고, 혈관이 잘 작동해야 하며,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분비되어야 하고, 염증이 적어야 한다. 다시 말해 생식은 몸 전체 건강의 종합성적표에 가깝다.
현대인들은 역사상 가장 오래 앉아 있는 세대가 되었다. 출근하면 의자에 앉고, 점심을 먹고 다시 앉고, 퇴근 후에는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본다. 하루 10시간 이상 앉아 있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문제는 몸이 이렇게 움직임을 잃어갈수록 생식력 역시 함께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남성에게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문제는 고환 온도 상승이다.
인간의 고환은 체온보다 약 2~3도 낮은 환경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정자를 생산한다. 그래서 고환은 몸 밖 음낭에 위치한다. 그런데 장시간 앉아 있으면 허벅지와 음낭이 밀착되고 골반 주변의 열이 배출되지 못한다. 마치 작은 온실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는 장시간 좌식생활을 하는 남성에서 정자 수 감소, 운동성 저하, 정상 형태 정자 비율 감소가 보고되고 있다. 특히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직군이나 장거리 운전기사에게서 이러한 경향이 더욱 뚜렷하게 관찰된다.
진짜 문제는 단순한 온도 상승이 아니다. 움직이지 않는 몸은 혈액순환을 떨어뜨린다. 생식기관도 결국 혈액으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혈류가 감소하면 고환과 전립선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생성에도 영향을 준다.
실제로 운동 부족 남성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은 경우가 많다. 테스토스테론은 단순히 성욕만 담당하는 호르몬이 아니다. 정자 생성, 근육량 유지, 집중력, 자신감, 에너지 대사까지 광범위하게 관여한다. 따라서 테스토스테론 감소는 단순한 남성성의 문제가 아니라 생식력 저하의 시작일 수 있다.
여성 역시 예외가 아니다.
좌식생활은 인슐린 저항성을 증가시킨다. 혈당 조절 능력이 떨어지면서 체지방이 늘어나고 만성 염증 상태가 발생한다. 이 과정은 여성호르몬 균형을 무너뜨린다.
특히 다낭성난소증후군(PCOS)을 가진 여성에서는 운동 부족이 배란장애를 더욱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인슐린 저항성이 심해질수록 남성호르몬이 증가하고 배란은 불규칙해진다. 생리가 밀리고 난포는 자라지 못한다.
난소 역시 혈액순환의 영향을 받는다. 걷고 움직이는 동안 골반 혈류는 증가한다. 반대로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 골반 내 정맥순환은 정체되기 쉽다.
일부 연구에서는 신체활동이 많은 여성일수록 난소 기능과 임신율이 더 좋다는 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좌식생활이 비만과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지방조직은 단순한 저장창고가 아니다. 지방세포는 수십 가지 염증물질과 호르몬을 분비하는 거대한 내분비기관이다. 체지방이 늘어날수록 만성염증이 증가하고 활성산소가 많아진다. 결국 정자 DNA 손상과 난자 노화를 가속화한다.
최근 난임 분야에서는 ‘산화 스트레스’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활성산소가 증가하면 정자의 DNA 단편화지수(DFI)가 높아지고 난자의 미토콘드리아 기능도 저하된다. 그런데 좌식생활은 이러한 산화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대표적인 생활습관 가운데 하나다.
흥미로운 사실은 걷기만으로도 상당 부분이 개선될 수 있다는 점이다.
거창한 운동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하루 30분 정도 빠르게 걷는 습관만으로도 인슐린 저항성이 개선되고 혈관 기능이 좋아지며 염증 수치가 감소한다.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증가하고 골반 혈류도 개선된다. 실제로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은 남성의 정자 질 개선과 여성의 배란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과도한 운동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마라톤 선수나 극한 운동선수에서 생식기능 저하가 보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적절한 움직임이다.
난임 진료실에서는 종종 원인을 찾지 못하는 부부를 만난다. 검사 결과는 대부분 정상인데 임신만 되지 않는 경우다. 그럴 때 의사들은 생활습관을 다시 들여다본다. 수면은 어떤지, 스트레스는 어떤지, 그리고 하루에 얼마나 걷는지를 묻는다.
생식은 생각보다 정직하다.
몸이 건강해야 임신도 가능하다는 아주 원초적인 원칙을 따른다. 현대인은 수많은 영양제와 최신 의학기술에 관심을 갖지만 정작 가장 기본적인 행동 하나를 잊고 살아간다.
걷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걷도록 설계된 동물이다.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삶은 인간의 몸이 예상하지 못했던 생활방식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생각보다 조용하게 찾아온다. 성욕 감소, 정자 감소, 배란장애, 비만, 호르몬 이상이라는 형태로 말이다.
혹시 오늘도 의자에 앉아 이 글을 읽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가장 좋은 난임 치료는 병원이 아니라 자리에서 일어나 30분 정도 걷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식력은 약국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움직임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글 : 조정현 원장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現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연세대 의대 졸업, 강남차병원 교수, 미즈메디강남 원장 역임
※ 이미지: AI 생성 (ChatGPT, OpenAI) /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시각 자료입니다.
※ 이 기사는 아기성공연구소 제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