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담배는 몸에 해롭다.
이 문장은 너무 익숙해서 이제는 별 감정도 남지 않는다. 그런데 질문을 하나 바꿔보자.
“담배가 내 아이에게도 영향을 줄까.”
이 질문 앞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최근 연구들은 단순히 ‘흡연은 건강에 나쁘다’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특히 남성이 사춘기 무렵 담배를 시작했을 경우, 그 영향이 훗날 태어날 자녀에게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단순한 생활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세포 수준에서 확인되는 변화라는 점이다.
핵심은 ‘유전’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유전의 방식’이다.
우리는 보통 유전이라고 하면 DNA를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 인체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DNA 위에는 ‘이 유전자를 써라, 쓰지 마라’를 결정하는 일종의 스위치가 붙어 있다. 이를 후성유전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 스위치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그 변화가 정자를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춘기는 남성에게 특별한 시기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정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쉽게 말해, 몸이 아니라 미래 아이의 설계도가 만들어지는 시기다.
그런데 이 시기에 니코틴과 독성물질이 지속적으로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단순히 폐 기능이 나빠지는 문제가 아니다. 정자의 정보 자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연구에서는 이런 변화를 ‘생물학적 나이’로 확인했다.
실제 나이와 별개로, 세포가 얼마나 빨리 늙고 있는지를 보는 개념이다. 결과는 간단하다.
사춘기 시절 흡연을 시작한 아버지를 둔 자녀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조금 더 빠르게 늙는 경향을 보였다.
물론 이 차이는 극적이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조금 더 빠르게 늙는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만큼 질병 위험, 회복력, 전반적인 생물학적 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하나 더 있다.
성인이 된 이후 시작한 흡연은 이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처음 설정되는 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춘기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시기다.
이때의 환경은 일종의 기본값이 된다. 반면 성인 이후의 변화는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 위에 얹히는 수정값에 가깝다.
그래서 영향의 깊이가 다르다.
이 이야기는 난임 진료실에서도 낯설지 않다.
겉으로 보기엔 정상인 정자지만, 수정이 잘 안 되거나 배아 발달이 기대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검사 수치로 설명되지 않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차이는 종종 **‘과거의 환경’**에서 비롯된다.
결국 질문은 다시 돌아온다.
흡연이 해로운가. 아니다. 이제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지금의 선택이, 미래 아이의 시작점을 바꾸는가.”
이 질문에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 출처 : European Respiratory Society (ERS) Congress, Juan Pablo Lopez Cervantes et al, 'Father's smoking initiation in puberty as associated with accelerated ageing in offspring', https://k4.ersnet.org/prod/v2/Front/Program/Session?e=685&session=19250>
※ 본 콘텐츠는 난임전문기자가 국내외 생식의학 관련 연구, 정책 자료, 통계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전달하는 해설입니다. 의학적 판단과 치료 결정은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의 상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 이 기사는 아기성공연구소 제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