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명당’에 자리 잡은 도시

  • 등록 2025.09.08 09: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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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_110만 용인특례시, 그 뿌리를 찾아서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전 회장의 묘역은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처인구 포곡읍 호암미술관 일원에 위치한 이 묘역은 뒤로는 산, 앞으로는 호수를 둔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이다.

 

‘생거진천 사거용인’ 정몽주·이병철 묻혀
모현 능곡로·지장실 마을·통삼리 일대 등
지역에 길지 산재…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무분별한 개발에 곳곳 지맥 끊겨 우려도
땅 숨결 살리는 선택이 희망찬 미래 견인

 

1. 왕과 공신이 반한 땅, 용인
2. 교육 도시 용인… 과거 합격율 최다(?)
3. 풍수지리와 ‘명당’ 용인
4.용인 사람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용인신문 | 110만 인구가 살아가는 역동적인 용인특례시. 본지는 ‘110만 용인특례시, 그 뿌리를 찾아서’를 통해 용인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시민들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취시키고자 한다. 왕과 공신이 사랑한 명당의 비밀부터, 수많은 과거 합격자를 배출한 유생의 고장까지, 우리가 몰랐던 용인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편집자 주>

 

■ 뛰어난 산세와 수세… 공동체 영혼 지탱해 준 장소

용인은 왜 명당인가. 오래된 듯하지만 지금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 있다. '생거진천 사거용인'. 살아서는 진천이 좋고 죽어서는 용인이 좋다는 뜻이다. 언뜻 듣기에는 단순한 지방 고유의 속담 같지만, 그 안에는 용인이 지닌 특별한 지형적·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다. 명당이라는 단어가 고루해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여전히 유효한 언어다. 왜냐하면 명당은 단지 죽은 자의 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터와 직결된 땅의 조건을 뜻하기 때문이다.

 

명당이란 흔히 묘자리를 고르는 풍습과 연결되곤 한다. 그러나 그 본뜻을 따져보면,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순하게 돌며, 물길은 흘러 넘치지 않고, 땅은 단단하면서도 습하지 않은 자리를 가리킨다. 오늘날 건축학이 말하는 채광·통풍·배수 조건과 다르지 않다. 결국 명당은 초자연적 미신의 산물이 아니라, 오랜 세월 사람들의 경험이 축적된 환경학적 지혜였다. 지기가 모인다는 말은 곧 햇볕과 바람, 물과 땅이 어울린 조건을 표현한 것이고, 풍수의 언어는 삶을 지속하게 하는 생존의 기술이었다.

 

실제로 우리 역사 속에서 명당은 언제나 중요한 자리에 있었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은 조선 왕조의 개창과 더불어 왕조의 기운을 모은 자리로 해석됐다. 천 년 고도 경주는 동해와 토함산이 감싸 안은 터전으로 풍수의 교과서라 불렸다. 임금의 비극을 품은 영월 장릉, 합천 해인사와 구례 화엄사, 파주 용미리의 마애이불입상, 아산 현충사와 평창 오대산 월정사까지, 모두가 명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시대와 민족의 에너지를 이어온 터였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자리는 단순한 풍광이 아니라 공동체의 영혼을 지탱하는 장소였다.

 

그렇다면 용인은 어떤가. ‘사거용인’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용인의 산세와 수세는 수도권 전체의 뼈대를 이루는 한남정맥 위에 놓여 있다. 이 땅을 함부로 파헤친다는 것은 사람의 척추를 부러뜨리는 것과 같다는 말까지 전해진다. 실제로 이곳은 풍수적 명당으로서의 자리를 오래전부터 증명해 왔다. 조선의 대학자 정몽주,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재상 채제공, 김대중 대통령의 부모 묘(현재는 이장한 상태),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묘까지 줄지어 자리했다. 풍수를 일부러 찾아 묻은 것이 아니라, 시대를 움직인 인물들의 자취가 오히려 이 땅의 가치를 증명한 셈이다.

 

■ “이보다 좋은 자리는 없다” 정몽주 묏자리

용인의 명당을 들여다보면 전설과 설화가 얽혀 있다. 수지구 풍덕천동 인근 처인구 모현읍 능곡로(능원리) 산3 일원에 정몽주와 이석형의 묘가 있다. 이곳은 ‘쌍유혈’이라 불리는 명혈로, 정몽주의 관이 지나갈 때 바람이 멈추자 지관이 “이보다 좋은 자리는 없다”라며 묏자리를 정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산줄기가 부드럽게 안아주고 바람이 고요히 쉬어가는 모습은 풍수 교과서에 나올 법한 대명당의 형세였다.

 

처인구 지장실 마을의 설화도 흥미롭다. 석성산 아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살던 세 아들이 아버지의 묘를 명당에 몰래 모셨다는 이야기다. 전해지기로는 그 덕에 가문이 크게 번창했다고 한다. 풍수는 단순한 이론이나 미신이 아니라, 사람들의 희망과 두려움이 얽힌 서사이자 공동체의 기억이었던 셈이다.

 

남사읍 통삼리 일대는 예로부터 숨은 명당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대규모 개발지구로 변모했지만, 산과 물길이 만나 생기를 모으던 터전으로 오랫동안 꼽혀왔다. 양지면 대대리의 봉황포란형도 빼놓을 수 없다.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지세라 하여 길상의 상징으로 불렸고, 사람들은 그 지형에 가문의 번영을 빌며 터를 잡았다. 풍수의 언어는 은유처럼 보이지만, 실제 지형의 특성과 환경을 세밀하게 관찰한 해석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풍수적 길지가 현대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수지, 죽전, 기흥은 옛날부터 좋은 터로 꼽혔는데, 지금은 수도권에서 가장 살기 좋은 주거지로 평가받는다. 산세가 포근히 감싸고 물길이 자연스럽게 흘러드는 자리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안전과 안락을 제공했다. 명당이 죽은 자의 땅에서 살아 있는 자의 삶터로 변주된 것이다.

 

그러나 개발의 속도는 늘 명당을 시험한다. 수지의 소실봉은 비록 높지 않은 동산이지만 기운을 저장하는 탱크 같은 곳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아파트 건설로 산 중턱이 깎이면서 지맥이 크게 손상됐다. 풍덕천동에서 상현동으로 이어지는 43번 도로 확장 공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남정맥의 중심 뼈대가 잘려 나가면서 용맥이 끊겼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구성 지역의 지맥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크게 훼손됐다. 풍수의 언어를 빌리자면, 동맥이 끊기면 피가 돌지 못하는 것과 같다. 땅의 혈맥이 단절되면 결국 땅도 메말라가고 사람도 병든다는 경고였다.

 

죽전도 다르지 않았다. 송파, 강동, 하남으로 이어지는 지세와 연결된 지맥이 무너지고, 생기가 약해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풍수 이론을 들지 않더라도 무분별한 개발이 생태계와 수자원을 고갈시키고 거주민의 삶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명당을 지킨다는 것은 곧 환경을 지키는 일이다. 그것은 미신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다.

 

용인의 자연은 여전히 풍수적 언어와 닿아 있다. 용인자연휴양림과 에버랜드 인근 산세는 ‘용이 노니는 형국’이라 불렸고, 죽전과 수지 일대는 산줄기와 물길이 만나 부드럽게 안기는 지세로 평가받았다. 실제로 이곳에 자리한 공원묘지나 시립묘역은 장풍득수의 형국에 맞춰 설계된 경우가 많았다. 전통 풍수의 원리가 현대 도시계획 속에서도 살아 있다는 증거다.

 

■ 용인, 풍수의 살아 있는 박물관

풍수는 단지 묘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마을 자리와 길의 배치, 집터의 방향에도 풍수적 고려가 숨어 있었다. 오늘날에도 지역의 설화와 문화 정체성 속에서 풍수적 해석이 회자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용인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이며, 풍수의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처럼 용인은 명당의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드문 도시다. 옛날부터 명당이라 불리던 자리가 지금은 수도권의 주거 중심으로 이어지고, 전해 내려오던 설화와 혈의 개념이 오늘날 도시 환경의 지혜로 다시 읽힌다. 문제는 우리가 이 땅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지맥을 함부로 끊으면 명당은 흉지로 바뀐다. 사람의 척추를 부러뜨리면 걸을 수 없듯, 땅의 척추를 무너뜨리면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흔들린다.

 

명당은 죽은 자의 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햇볕이 잘 드는 집, 바람이 순하게 도는 마을, 물이 맑게 흐르는 터전, 모두 명당의 다른 이름이다. 용인이 명당이라는 말은 그래서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미신이 아니라 환경과 삶의 질을 지켜온 경험의 증거다. 오늘의 우리는 그 지혜를 계승할 수 있을까. 무분별한 개발 대신, 땅의 숨결을 살리고 명당의 맥을 이어가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바로 그 물음이 용인의 미래를 결정짓는 진짜 질문이다. <김종경 기자>

김종경 기자 iyongi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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