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모르포즈와 사이버스페이스 문화

  • 등록 2025.09.03 10:3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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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연 (동화작가 문학박사 경희대 외래교수)

용인신문 |

미술사 속에서 ‘아나모르포즈(anamorphosis)’는 조금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개념이다. 이는 원근법을 의도적으로 비틀어 특정한 각도에서만 제 모습을 드러내는 기법을 뜻한다. 한 방향에서 보면 기괴하게 일그러진 형상이지만, 시선을 달리하면 그 속에 숨겨진 진짜 모습이 나타난다. 16세기 화가 한스 홀바인의 회화 대사들 속 해골은 정면에서는 알아보기 어렵지만, 옆으로 비스듬히 바라보면 선명하게 떠오른다. 관람자는 그림을 단순히 ‘보는 자’가 아니라, 시선을 이동하며 적극적으로 ‘발견하는 자’가 된다.

 

아나모르포즈의 원리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이버스페이스 문화와 묘하게 닮아 있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의 정체성과 관계, 정보와 소통은 언제나 다층적이고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SNS 계정을 정면으로만 바라본다면, 화려한 여행 사진과 꾸며진 일상만 눈에 들어올 수 있다. 그러나 각도를 달리해 그 사람의 댓글, 좋아요 패턴, 혹은 때때로 흘리는 짧은 문장을 관찰하면, 그 이면에 숨은 불안과 고독, 또 다른 욕망이 드러나기도 한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자아란 본래 아나모르포즈처럼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존재’인 셈이다.

 

아나모르포즈의 특징은 단순히 왜곡된 이미지가 아니라, 해석의 능동성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관람자는 특정한 위치를 찾아내야만 숨겨진 형상을 볼 수 있다. 이는 사이버 문화 속 이용자가 수행하는 ‘참여’와 닮았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임, 메타버스에서 의미는 고정된 채 주어지지 않는다. 각자가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시선을 들이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예를 들어 온라인 게임에서 한 장면은 단순한 전투일 수 있지만, 플레이어의 관점과 맥락에 따라 우정의 추억이 되기도 하고, 자본주의적 경쟁의 풍자가 되기도 한다. 사이버 공간의 의미는 언제나 플레이어블(playable)한 해석 위에 놓인다.

 

아나모르포즈는 동시에 권력과 시선의 문제를 드러낸다. 홀바인의 그림에서 대사들의 뒤편에 숨겨진 해골은 관람자에게 일종의 ‘죽음의 메시지’를 던진다. 표면적 권력과 지식의 화려한 상징 뒤에는 결국 인간 존재의 유한성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는 사이버스페이스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편리한 정보 소비와 화려한 소통의 무대 뒤에는 데이터 감시, 알고리즘의 통제, 가상 자아의 소모라는 그림자가 도사린다. 정면에서만 바라보면 보이지 않지만, 각도를 틀어보면 이 어두운 진실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아나모르포즈적 시선을 통해 사이버 문화의 양면성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표면의 화려함과 즐거움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 감춰진 구조와 권력, 그리고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훈련 없이는 디지털 시대의 진짜 풍경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사이버스페이스는 단일한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며, 우리가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와 의미가 생성된다.

 

결국 아나모르포즈는 우리에게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당신은 어디에 서서 사이버 세계를 보고 있는가?” 정면에서만 보이는 ‘화려한 왜곡’에 머물 것인지, 고개를 비틀어 숨겨진 형상을 발견할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사이버스페이스 문화는 바로 그 선택의 차이 속에서, 다른 얼굴의 진실을 우리 앞에 내놓는다.

용인신문 기자 news@yongi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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