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전 인조반정때 종갓집 피난… 처인구 능원3리에 뿌리내려 [용인신문] 처인구 모현면 능원 3리는 연안이씨 종갓집과 저헌(樗軒) 이석형(1415~1477) 선생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이석형 선생은 조선 세종대에 과거시험에 3장원한 집현전의 학자이며 성삼문, 신숙주 등과 함께 8대 문장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석형 선생의 집안이 이곳에 터를 잡게 된 것은 조선 인조반정 때부터였으니 400년 전통이다. 연안이씨 18대 손으로 능원 3리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지키고 있는 이문자(81) 선생은 “인조반정 때부터 400년”이라며 “실패하면 3족을 멸한다지 않았어요. 후손이 이곳으로 피난을 온 거에요. 원래 종갓집 터는 여기(문강재실 소재지)가 아니었어요. 여기는 문강재가 세워지기 전 희귀본과 책을 많이 보관하고 있는 서재가 있었고 공부를 하던 곳이었어요. 따라서 서재골이라 불렸어요. 여기는 마을이 없던 것 같아요. 삼거리 모현농협 능원지소 자리가 원래 집터였어요. 할아버지가 3살 때 큰 불이 나서 여기로 집을 짓고 옮겼대요. 내가 어렸을 때는 시작골, 새작골 그랬어요. 왜 그런가 족보를 보니까 서재골에다 다시 종가를 지었다고 나와 있더군요”라고
경기도기념물 제44호 [용인신문] 풍전등화의 고려를 구출한 처인성. 처인성은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 있으며 둘레 425m, 높이 3~6m 가량의 작은 평지토성이다. 처인성은 당시 거침없이 유라시아를 재패하던 몽골 2차 침입시(1232) 적장 살리타이를 사살하면서 승전고를 울린 유서 깊은 항쟁터다. 그러나 그동안 처인성의 위치가 맞느냐 아니냐를 놓고 오랜 논의가 있어왔다. 논의의 시발은 1990년대 말, 본보가 처인성이 산성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데서 비롯됐다.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의 ‘고산성’ 표시를 근거로 한 주장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위치비정 문제가 확실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용인신문은 그 후에도 한국지명총람의 자료를 근거로 해발 238.9m의 산성임을 주장하는 등 간간이 관련 자료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국지명총람 기록대로 답사해보니 남사면 아곡리, 북리, 완장리 경계지점의 ‘십자봉’ 정상 부근은 한눈에 봐도 천혜의 요새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용인신문이 고지도 등 문헌을 찾기 시작한 이유는 당시 몽골의 기세를 꺾기에는 야트막하고 조그마한 평지성이 과연 가능하겠냐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이같은 의구심이 가능했던 것
용인향토문화지킴이 대표와 용인문화원장을 지냈던 박용익 원장이 생전에 탁본한 허난설헌 친필(맨 아래)과 허난설헌 시비. 원삼면에 허엽·허성·허봉·허난설헌·허균 혼이 깃들다 [용인신문] 초당 두부를 모르는 사람이 드물다. 강릉의 맑은 물로 두부를 만든 초당 허엽(1517~1580)을 비롯해 그의 아들 허성(1548~1612), 허봉(1551~1588), 딸 허난설헌(1563~1589), 막내 아들 허균(1569~1618)에 이르는 가족 모두가 조선 당대의 명 문장가로서 세상에서는 이들 소문난 천재 집안을 칭송했다. 이들 허씨 5문장이 용인 처인구 원삼면 맹리 한 자리에 모셔져 있다. 원삼면 맹리 일대는 양천 허씨가 입향 해 450여년 이상 세거하고 있는 동족촌으로 맹골과 능안마을은 허균과 허씨 5문장이 있는 세장지로 유명하다. 백암 방면으로 향하는 17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미평리약사여래입상이 있는 미륵뜰과 마주하고 있는 건너편 쪽 마을이다. 5문장을 한 자리에서 대할 수 있다는 것이 엄청 흥분되는 일이지만 비운의 천재 집안이라는 점에서는 숙연해질 뿐이다. 원래 경기도 시흥군 서초리(현 서울시 서초동)에 있던 묘역이 경부고속도로 개설공사로 인해 1968년 초당
용인미평리약사여래입상(龍仁彌坪里藥師如來立像) : 경기도문화재자료 제44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미평로 81번길 58-16 “병 치유 기원하면 약을 내려준다”… 긴 세월 동고동락 [용인신문] 비티에스, 영화 기생충 등 문화 산업의 위력을 실감하는 요즘, 각 지역마다 지역을 소재로 한 콘텐츠 개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굴뚝 없는 산업으로 각광 받고 있는 문화산업은 삶의 터전에서 비롯되는 실로 다양한 자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특히 용인은 문화유산의 보고라고 할 정도로 문화유산이 많은 지역이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가미된 콘텐츠가 탄생하기를 기대하면서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주>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 처음 착륙한 지 막 1년이 됐다. 여전히 온 국민이 바이러스와의 전쟁 한 복판에 서 있는 요즘, 중생의 신체적 질병과 정신적 괴로움을 약사여래입상에 빌어 소멸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원삼면 미평리 마을회관 뒤편으로 돌아가면 고려시대 불상인 용인미평리약사여래입상이 밭 주변에 우뚝하게 서있다. 이 마을은 미륵불이 서있다고 하여 ‘미륵뜰’로 불리고 있다. 마을에서는 이 약사여래입상에게 병을 치유해 달라고 기원하면 약을 내려준다고 하여 오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