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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

안젤리 미술관 관장 권숙자

수필집 '이 세상의 산책-안젤로의 전설'

   
안젤리 미술관 관장인 권숙자 교수(강남대 회화전공)가 수필집 ‘이 세상의 산책-안젤로의 전설’을 펴냈다.
안젤로는 비올리스트로 활약하던 작고한 남편(곽연섭)의 세례명으로, 이 수필집은 그녀가 남편을 회상하면서 써내려간 행복과 고통, 눈물과 환희, 순간과 영원의 일기장이다.

동시에 이 책은 음악가인 남편과 함께 써내려간 두 예술가의 삶의 고백서이기도 하다. 남편과의 평소 대화와 그 마음까지 그녀의 섬세한 손을 빌어 고스란히 묘사돼 있다.
두 사람의 예술적 일상은 아름답기만 하다. 이 세상을 잠시 산책하다가 돌아간 남편과 나눴던 수많은 일상의 편린은 철학적 사색으로, 신앙적 구원으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

그녀가 지난 5월 개관한 안젤리 미술관은 남편 생전에 함께 계획하던 꿈의 공간이다.
“화가라면 대부분 미술관을 가지는 것이 소망이기도 하다. 그것에 접근하는 것은 말로만 될 뿐, 실행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미술관이긴 하지만 우리는 음악이나 문학 또는 다른 예술이 공유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 공간에서 고급스럽고 품위 있는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 젊은 시절 유명한 장소에 불려 다니며 4중주를 연주한 남편의 꿈도 남달랐다. 미술관이 수익성 있는 사업이 아니기에 서로가 지닌 막연한 꿈을 꾸며 각자 바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부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창 미술관 건립의 꿈으로 분주하던 중 남편과 어머니를 잃은 좌절과 절망을 딛고 혼자 이 웅장한 공간을 완성했다.
권 교수는 빼어난 글 솜씨로 남편과의 만남부터 이별까지 20여년의 사랑을 마치 그림 그리듯, 혹은 음악을 연주하듯 애절하고 잔잔한 선율로 감동을 준다. 결혼,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즐거움, 여행, 예술적 동지, 병상의 남편, 미술관을 함께 꿈꾸던 행복한 순간, 떠나보냄, 그리고 이 모든 사랑의 여정이 안젤리 미술관으로 완성됐다. 안젤리 미술관 속에는 모든 추억과 사랑과 구원과 미래가 담겨있다.

수필집 모든 페이지마다, 모든 글마다 그녀가 그린 그림이 아름답게 배치돼 있어 수필을 읽는 감동을 몇 배로 높이고 있다.
로마 시청 깜비돌리오 광장에서 두 사람이 올린 결혼식 장면과 어우러지는 권교수의 작품 ‘이 세상의 산책-5월의 신부’는 마치 두 사람의 젊은 시절의 환희와 감탄이 찬란하게 빛나는 듯 하고, 통증에 힘들어하는 남편을 지켜보는 고통의 순간에는 고뇌에 겨워하는 인간의 원초적 작품을 곁들여 삶과 죽음의 철학을 글과 그림으로 관통시키고 있다.

그녀의 미술·음악적 지식, 세계의 건축 명소를 둘러본 경험, 남편과 절친이었던 성악가 박세원 교수와의 변치 않는 오랜 우정 등은 곳곳에서 수필의 멋과 품위를 높여주고 있다.
“영정 사진은 미국에서 개인전을 할 때 그와 동행하여 전시장에서 그가 나를 감싸 안고 찍은 것이다. 언제나 나의 그림세계를 이해하고 나를 엄격히 비평하고, 색깔과 화면의 구성까지 평론가처럼 호되게 지적하던 숱한 시간들을 그와 함께 나누어온 세월이다. 지금 나는 예술의 동행이던 그를 잃고 나의 작품세계를 이해하여 주고 좋아해 주던 사람을 떠나보내야 한다. 글을 쓰면 미세한 부분까지 지적하고, 영문 편지를 쓸 때면 문장과 단어를 고쳐주고, 액자를 만들어 고리를 달아주고 작품을 포장해 주던 그런 사람을. 작품에 대한 혹독한 지적을 할 때나 인간적인 결점을 피력할 때면 자존심이 무너져 다툰 날도 많았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그가 지적한 것이 옳다고 판단되기에 그의 결정에 따르곤 했다.”

“의견이 분분하여 서로의 예술적 혼이 부딪히면 어떤 양보도 할 수 없는 칼날 같은 감성이 팽팽한 대립으로 서로의 자존심을 세우기도 했다. …개성이 뚜렷한 서로의 예술적 감각이 부딪히면 우리는 불난 듯 매섭고, 처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만의 공유하는 감동과 대화법이 있기에 내일의 태양은 어김없이 떠오르곤 하였다.”

어깨를 감싸 안고 찍은 사진 속에서 남편을 오려내 침묵 속에서도 자신의 작품 세계를 안내할 것을 소망하는 권숙자 교수. 그녀는 수필집 ‘안젤로의 전설’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마음, 떠나보낸 마음을 긴 여운으로 승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