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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열되는 이건희 미술관 유치경쟁

서진수 (강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술시장연구소 소장)

 

[용인신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타계 이후 6개월간 우리 사회의 관심사 중 하나는 유산 액수와 천문학적인 세금, 그리고 미술품의 향방에 관한 것이었다. 2021년 4월 2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유족이 삼성전자를 통해 상속세 납부, 사회공헌, 미술품 기증 계획 등을 발표하였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리는 미술품 2만 3000여 점 가운데 고미술품 2만 1600점은 국립중앙박물관과 산하의 국립박물관에 기증하고, 국내외 근현대 작가의 작품 1400점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하며,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박수근미술관, 이중섭미술관 등 작가의 연고지 미술관에도 기증한다는 내용이었다.

 

미술관, 박물관을 건립할 때 기본 요건인 작품 수 100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이건희 컬렉션은 최대 230개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지을 수 있는 수량이며, 감정가만 대략 3조 원에 달하여 가히 ‘세기의 기증’이라고 할 수 있다. 전국 17개 광역시·도에 13개씩의 소규모 미술관과 박물관을 지을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작품 수준은 차체하고 1969년 설립 이후 현재 소장하고 있는 작품 수가 8782점이던 국립현대미술관에 1488점의 작품이 한꺼번에 기증되어 작품 수가 17%나 증가했고,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등의 고가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43만 점이던 소장품 수가 한꺼번에 5%나 증가하고, 특히 기증품에 국보 14건과 보물 46건이 포함되어 있다.

 

기증 당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수장고 부족을 언급하였고, 다음날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별도의 전시실이나 특별관 설치를 검토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그 후 기증에서 제외된 부산시의 발 빠른 유치 계획 발표를 비롯하여 수도권 규제로 역차별받은 경기 북부 지역인 의정부시를 추천하는 경기도, 호암미술관과 삼성반도체와의 연고를 앞세운 용인시, 삼성전자가 있는 수원시, 용지 확보를 앞세운 오산시, 기증자 선대와의 연고를 내세우고 투자액을 발표한 진주시, 국내 대표급 관광지와 불교 문화 중심지를 앞세운 경주시, 대구시와 대구미술관을 앞세운 경상북도 등의 유치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 차원의 조사와 논의가 진행 중이다. 대규모의 미술품 기증을 한 군데에 모아두는 방법과 여러 곳에 분산하는 방법, 분산할 경우 몇 군데에 얼마 정도의 작품을 나눌 것인지에 대한 기준 마련, 그리고 정부가 결정할 것인지 지자체 공모 사업을 할 것인지 등 많은 논의가 필요할 사안이다. 미술관을 보유하고 있는 지자체로서는 작품구입비의 태부족으로 작품 수급 무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2019년 기준 국내 국공사립 미술관의 작품구입 총액이 228억 원에 불과하여, 이건희 컬렉션의 감정가 3조 원은 국내 미술관 전체의 132년간 구매비임을 감안했을 때 수혜를 받은 지자체와 미술관, 그리고 수혜를 받지 못한 곳의 격차는 상당히 크고 커질 것이다.

 

미술관이 없는 지자체는 차제에 미술관을 확보하고, 문화예술 시설과 관광 인프라를 확충하는 기회로 삼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 결정의 기준은 단순히 부지 확보나 건립비용을 넘어 미술품을 관리하고 유지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의 확보, 항온항습 시설을 갖춘 시설, 인력을 고용하고 시설 관리를 지원할 수 있는 충분한 재정 여력을 모두 갖춘 지자체와 행정 마인드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결정해야 할 것이다.

 

전국적으로 267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국공립, 사립 미술관이 이미 있다. 그러나 하드웨어는 웅장한데 작품 구입비가 전혀 없거나 삭감되어 제대로 작품수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미술관도 있고, 전시 건당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여 전시가 부실한 곳도 적지 않다. 이건희 컬렉션을 유치한 후에도 지속해서 미술품을 구입하고, 인력을 보강해야 좋은 전시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차제에 각 지자체의 미술관 운영 현황도 모두 점검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