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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사람

한규현 목사(더살리는 중앙교회)

 

[용인신문] 예전에 맘바바랑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본 적이 있다. 맘바바랑은 저주를 내리는 마법사이다. 맘바바랑은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으면 자신의 명부에 이름을 올려놓고 매일 저주를 내리는 주문을 외운다. 그런데 맘바바랑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마지막에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나왔다. 왜냐면 저주를 내리는 마법사가 교회에서 기도하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영상을 촬영하던 사람도 당혹스러워서 맘바바랑에게 무슨 기도를 하는지 물었다. 맘바바랑의 대답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나는 독실한 신자다. 나는 능력 있는 ‘맘바바랑’이 되기 위해 저주를 내리는 능력을 달라고 항상 기도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사람을 죽이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면 기독교의 본질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인가? 요한복음 6장 40절에 보면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는 다시 살아나게 된다.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도 반드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만약 살리는 열매가 아니라 죽이는 열매를 맺고 있다면 종교적으로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기독교 역사를 보면 중세에 살리는 열매가 아닌 죽이는 열매를 맺기도 했다. 작년에 광야 아트센터에서 공연한 ‘더북 성경이 된 사람들’이라는 뮤지컬을 봤다. 이 뮤지컬은 14세기 중반 라틴어로 된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던 존위클리프(John Wyclif)로부터 시작된 롤라드(Lollardy) 운동에 대한 내용이다. 중세 가톨릭 교회는 라틴어 성경만 읽도록 했다. 그런데 1382년 위클리프의 제자들은 가톨릭 교회와의 오랜 전통을 끊어버리고 신구약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다. 1000년 동안의 전통을 깨고 유럽의 언어로 성경이 완역된 것은 처음이었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 중세 가톨릭 교회는 성경을 번역한 위클리프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심지어 위클리프는 1384년 12월 31일 세상을 떠났는데 44년이 지난 후에 교황은 칙령을 내려 위클리프의 사체를 발굴하여 화형을 시켰다. 뿐만 아니라 영어로 번역된 성경을 전하는 수많은 롤라드들이 순교를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라드 운동은 소멸되지 않았고 결국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위대한 종교개혁의 위대한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되었다. 종교개혁은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는 기독교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본질로 돌아가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지금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만약 기독교의 이름으로 생명을 죽이는 열매를 맺고 있다면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 분명하다. 외적으로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생명을 살리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죄로 인해서 탄식하는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 세상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사람을 살리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모두가 고통받고 신음하는 가운데 기독교의 본질을 회복하여 그리스도인이 가는 곳마다 사람이 살아나고, 가정이 살아나고, 세상이 살아나길 바란다. 

 

약력:극동방송 용인동탄지회 지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