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임동진(공세동 열린문교회 초대목사 ‧ 배우 ‧ 극동방송 용인동탄지회 명예지도목사)

     극동방송 용인동탄지회 명예지도목사

 

[용인신문] 어느 해, 여름날 새벽기도회 시간이었다. 낯선 젊은 청년 한 명이 눈에 들어왔고, 성도석에 앉아 있는 그의 태도나 얼굴을 보니 술에 취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반바지 차림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자신의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치며 말씀을 전하는 사이마다 “아멘! 아멘!”하고 외치는 것이 밤새 술을 마신 후 술기운에 예배 훼방 차 교회 문을 넘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렵게 시간을 마친 후 기도회 시간을 뒤로하고, 빠른 걸음으로 성전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혹여라도 술 취한 젊은이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계단을 바삐 내려가는 중, 위에서 “목사님!” 하는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붙들렸구나!”라고 생각하며, “네!” 하는 순간, 발목이 접혀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런 모습을 본 젊은이는 뛰어 내려와 나를 부축하며 “괜찮으세요? 조심하셔야지요.”라고 말했다.

 

진통이 심해 병원에 가보니 발목에 골절상을 입었다. 응급처치 동안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보니 수년 전 목사 안수를 받으며 하나님과 나누었던 몇 가지 언약 중, 한 대목이 나의 뇌리를 강타했다.

 

그것은 교회 안에 술 취해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도 그에게 냉수를 대접하고,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던 전후 사정을 들어주고, 따뜻하게 품고 위로하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술 마신 젊은이가 귀찮아 피하려 했던 나를 따끔하게 질책하셨구나 하는 깨달음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 날 그 젊은이가 어제 그 자리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다. 예배를 마친 후 그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가슴에 품고 기도를 드린 후 목양실에서 잠시 대화를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홀어머니를 모시고 동생과 함께 세 식구가 살고 있는데 며칠 전 교회 가까이에 이사를 오게 되었고, 그동안 환경에 대한 불만과 착실한 동생과의 갈등 등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술을 마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정도가 심해 용인의 모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까지 받아 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모두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다시 그를 위해 기도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며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께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자고 간곡히 권면하였다. 그 후 그는 열심히 교회에 나왔고, 그에게서 풍기던 술과 담배 냄새도 서서히 사라졌다. 그뿐인가, 교회 안의 궂은일, 음식물 찌꺼기와 오물처리는 혼자 도맡아 했다. 그의 변화와 함께 어머님의 교회 출석이 시작되었고, 주방 봉사에 헌신적인 권사님이 되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목사님 저도 성가대 찬양을 하면 안 되나요?”라고 말했다. 나는 잠시 성가대원이 되려면 다소의 조건이 있었기에 망설였다. 그러나 조건보다는 하나님을 찬양하고픈 열정과 열망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성가대장님께 간곡히 사정해 수락을 얻어냈다. 이후 그가 하얀 성가대 가운을 입고 성가 대원들 사이에서 열심히 찬양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먹먹해진 내 가슴속에서는 감사와 기쁨의 눈물이 솟구쳤다.

 

누가복음 9장 48절 후반절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귀찮아 달아나려던 나를 주저앉히신 나의 하나님은 그 젊은이도, 나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셨다. 교회 은퇴 후 어느 매장에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갔는데, 뒤에서 누가 “아버님!”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그 젊은이였다. 우리는 반갑게 서로 끌어안았다. 그가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일찍 떠나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이따금 그의 어머니 권사님도 전화를 걸어와 아들과 잘 지내며 기쁨과 감사의 기도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나는 “역시 하나님이십니다.”라며,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