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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근심을 밭에서 키우다ㅣ박승민

근심을 밭에서 키우다

                                                       박승민

 

 딸은 다섯

 

 큰집에서 양자로 들인 아들이 하나

 

 아침밥이 삭는 내내 땡볕에 붙어살다가

 

 밤나무 그늘에서 잠시 땀을 어르는 사이

 

 미지근한 보릿물에 밥 한술 뜨는 사이

 

 땅에 묻어둔 누런 근심이 꼬물꼬물 소매로 기어든다

 

 탄저 먹은 고추는 화농처럼 번져가고

 

 풍작 소식, 생강밭은 생강밭대로

 

 사네, 못 사네 베트남 며느리의 전화통 속 꼬부라진 소리의 표정까지도

 

 박승민은 1964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2007년『내일을 여는 작가』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슬픔의 시인이다. 농촌공동체가 와해되는 것이 슬프고 이주노동자가 겪는 고통이 슬프고 논밭이 아파트로 변하는 것이 슬프고 죽음이 슬프다.

 「근심을 밭에서 키우다」는 슬픈 가족사의 이야기다. 딸만 다섯인 농사꾼은 큰비에서 아들 하나를 양자로 들여 대를 잇는다.

 땡볕에서 일 하다가 땀을  식히는 사이, 보릿물에 밥 한 술 뜨는 사이, 땅에 묻어둔 근심이 소매로 기어든다. 근심은 탄저병에 걸린 고추농사고 풍작이라는 생강밭, 풍작이면 생강값은 똥값이 될 것이 뻔하니 근심 아닐 수가 없다. 그뿐인가. 베트남에서 맞은 며느리는 사네, 못사네 하며 친정부모에게 전화를 한다. 근심 아닌 게 없는 밭두렁이다. <창비> 간 『끝은 끝으로 이어진』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