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그늘에서
마종기
봄꽃을 넋 놓고 보는
애잔한 마음아,
빨리 늙어라.
먹구름보다 무거운
이별도 참을 수 있게.
봄비의 한숨도
가슴 아파지는
안개의 여운도
아무도 적시지 마라.
만남도 헤어짐도
긴 잠에 들게.
바람 불자 쓸려간 꽃은
어디를 헤매며 울까,
불면의 향기만
어둡게 퍼지고
대답이 없는 길,
부디 잘 가시게.
마종기는 1939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연세의대, 서울대 대학원을 마쳤다. 미국 오하이오 주 톨레도에서 방사선과 의사로 일했다.1959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이번 시집에서는 빼어난 서정성을 보인다. 그는 삶에서의 연민과 응시와 회억의 숲에 든다. 그의 시세계는 광활하고 울창하다. 독자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울창한 숲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그늘에서」는 그의 이와 같은 서정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첫연은 자신에게 빨리 늙어달라고 명령한다. 봄꽃을 넋 놓고 보는 애잔한 마음에게 먹구름보다 무거운 이별도 참을 수 있게 늙어달라는 주문은 죽음에 닿는다. 죽음 아니라면 먹구름보다 무거운 이별은 없을 것이다.
둘째연의 흐름은 첫연에 이어진다. 만남도 헤어짐도 긴 잠에 들게, 아무도 적시지 마라고 주문한다. 봄비의 한숨도, 안개의 여운도 아무도 적시지 않아야 긴 잠에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연 역시 죽음에 닿는다. 바람에 쓸려가는 꽃은 향기와 어둠을 남기고 떠나는 것이지만 ‘부디 잘 가시게’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모든 혼령들에 대한 마지막 인사는 ‘부디 잘 가시게’다. <문학과지성사> 간 『천사의 탄식』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