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우농(愚農)의 세설(細說)

죄짓지 마! 누구에게도 고개 숙일 일 없으니까.

 

[용인신문] ‘고은苦恩’이라는 말이 있다. ‘쓴맛의 은혜’라는 말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의 학자 단옥재段玉裁가 허신의 설문해자를 장장 30권 주석을 마치면서 했다는 말인데 함께 설문해자 주석에 참여했던 제자들이 주석의 완결을 뿌듯해하며 우쭐했던 모양이다.

 

이에 단옥재가 기자불립企者不立 과자불행跨者不行이라는 노자 도덕경 24장의 경구를 말해준다. “발끝으로 서는 사람은 바르게 서지 못하며, 가랑이를 벌린 채로 걷는 자는 멀리 가지 못한다”는 것이 자구의 해석이지만 속뜻은 조금 다르다.

 

기자불립은 자신을 높이려 하는 것에 대한 것이고, 계요 과자불행은 자신을 드러냄에 대한 계다. 이를 송사련宋祀連은 그의 두 아들에게 불서수숙不恕受孰이라는 말로 압축해 준다. 이 말은 상당히 직설적인데 누군가에게라도 용서받지 않는 삶을 살라는 말로,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는 지난한 삶을 살아왔던 아버지로서의 뼈아픈 고백이 담겨있는 경계의 잠箴인셈이다.

 

사련의 삶은 그야말로 질풍노도다. 역사의 공과를 떠나 그에게는 일정량의 스토리가 있는데 경기5악이라는 송악 감악 심악 북악 관악을 바라보는 거북바위 위에서 안당정승댁 서고모庶姑母의 아들 노총각 송사련은 낮잠을 자다 청룡과 황룡이 품으로 달려드는 꿈을 꾼다.

 

그날 밤 안당 정승댁에 기고가 있어 일을 도와주고 집으로 돌아와 있는데 비녀 연일정씨가 제사음식을 가지고 홀로 있는 그 방으로 들어오자 속내를 참지 못해 일야를 하는데 덜컥 임신되어 야반도주를 한다. 여기서 태어난 자식이 후대 대학자 송익필 송현필 형제다. 불온했던 자신의 삶과는 달리 아들에게는 반드시 불가역적 정도正道만을 걸으라 한다. 그렇게 선택한 방법이 경전13경과 그 주소를 다 읽고 쓰고 외우는 길이다. 이언이지만 “세간엔 경전을 책 없이 읽고 쓰고 외우면서 가르칠 수 있는 이는 오직 귀봉이 유일”하다는 말이 조선 선비들 간에 파다했다.

 

훗날 불서수숙의 삶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무자기毋自欺 삶으로 이어졌고, <毋自欺三字 是吾平生所自勉者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라는 세 글자는 내가 평생 힘써 온 바이다> 이는 후일 우암 송시열의 곧을직直 철학의 단초가 된다.

 

불서수숙이든 무자기든 곧을직이든 이 말들이 주는 함의는 간단하다. 일생을 살면서 누군가에게 용서를 빌만한 짓은 하지 말라는 말이다. 당나라의 유종원柳宗元이 쓴 하간전河間傳에 는 “나쁜 짓도 처음이 어려운 거지 그 다음부터는 습관”이라고 했다.